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物華天寶 人傑地靈(물화천보 인걸지령)

by 까마귀마을 2026. 5. 27.
物華天寶 人傑地靈(물화천보 인걸지령) 산물의 화려함은 하늘이 내린 보배이고 인물이 걸출함은 땅이 신령스러워 서다.
 
 

滕王閣序(등왕각서)

南昌故郡 洪都新府((남창고군 홍도신부) : 옛날에는 이 군의 이름이 남창이요 관부의 이름을 새롭게 지어 홍도가 되었네.

星分翼軫 地接衡廬((성분익진 지접형려) : 별자리는 남쪽 별 익성과 진성으로 나뉘고 땅은 서남의 형산과 북쪽 여산에 접했으니
襟三江而帶五湖  控蠻荊而引越((금삼강이대오호 공만형이인구월) : 삼강을 옷깃처럼 전면에 놓고 오호를 띠처럼 둘렀으며 형만 땅을 잡아당기며 구월 땅을 이끄는구나.
物華天寶 龍光射牛斗之墟((물화천보 용광사우두지허) : 산물의 화려함은 하늘이 내린 보배라 흙속의 용천검 빛은 북두성 견우성으로 반사되고
人傑地靈 徐孺下陳蕃之榻((인걸지령 서유하진번지탑) : 인물이 걸출함은 땅이 신령스러워서 이니 건방진 태수 진번도 서유에게는 의자를 내려줬네. (진번은 홍주의 태주로 평소 빈객을 접대하는 일이 없는데 다만 서유에게 만은 예외로 그의 덕을 흠모하며 특별히 걸상을 준비하여 대접하였다)
이하 생략...

(전문 한글 해석문은 아래 따로 올립니다)

 

옛 부터 물자가 풍부하고 인걸이 많이 배출되는 이런 땅을 하늘이 내린 길지이고 복지(福地)라 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인간은 땅을 떠나서 살 수 없다. 옛말에 인심은 곳간에서 나고  걸출한 인재는 땅의 지기(地氣)를 받는다고 한다. 같은 땅에도 안전한 땅이 있고 위험한 땅이 있다. 나무가 잘 자라는 땅이 있고 나무가 시들시들 말라죽는 땅이 있다. 안전하고 기름진 땅에서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욕구는 우리 인간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소망이 아닐수 없다. 중국인들은 설 명절인 춘절에 집집마다 도부(桃符)라고 일컫는 복숭아나무로 만든 판자를 문의 양쪽에 걸고 문신(門神)이나 빨간 종이에 한해의 소원과 희망을 담은 대련(對聯)을 써 붙인다. 또는 문신에 해당하는 그림을  붙히기도 한다. 대련 문구중 많이 써이는 문구 중 하나가 物華天寶 人傑地靈(물화천보 인걸지령)이라 한다. 이 구절의 유래는 초당사걸(初唐四傑)중 한명으로 일컬어지는 왕발이 25세 약관의 나이에 지은 滕王閣序(등왕각서 서문)라는 장문의 시문 초반부에 나오는 구절이다. 남창(南昌) 고군 홍도신부(洪都新府) 지역을 묘사하며, 풍요로운 자연과 인재가 모이는 곳이라 서술하고 있다. 이후 내가 살고있는 지역이 물산의 풍요로움과  뛰어난 인재를 배출하는, 하늘도 땅도 굽어살펴 주길 바라는 기원( 祈願)이 되었다. 등왕각서는 총 155문장으로 이루어진 장문의 시문으로 등왕각 주변 지역의 경치에서 부터 자연과 천문 지리 인간사를 총망라한 천하 명 문장으로서 그가 지닌 사상과 학문적 깊이를 가늠할수 있다.

 

등왕각은 중국 강남의 3대 명루 (황학루,악양루,등왕각)의 하나로서 중국 장시성 난창시 옌장호 간강 동쪽 연안에 위치하고 있다. 등왕각은 당고종(唐高宗 )영휘(永徽) 4년(653)에 당고조(唐高祖) 이연(李淵)의 아들 이원영(李元嬰)이 홍주자사(洪州刺史)가 되었을 때 처음 세웠졌다. 사서에 따르면 이원영이 당태종 정관(貞觀)(627~649) 연간에 산동성 등주(藤州)에서 등왕(滕王)에 봉해졌는데, 이때 그곳에 누각을 세우고 등왕각이라고 했고, 훗날 강남의 홍주(洪州)로 옮겨가서 다시 세웠다. 뒤에 세운 이 누각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바로 그 등왕각이다.

 

당척언(唐摭言)에 따르면 당고종 상원(上元) 2년(675) 가을, 부친을 만나러 교지(交趾)로 가던 왕발(王勃)이 남창(南昌)을 지날 때, 홍주도독 염백서(閻伯嶼)가 중양절에 중수공사를 마친 등왕각에 손님들을 불러 연회를 벌였는데, 왕발의 명성을 들은 바 있는 염백서가 그를 청하여 연회에 참석하게 하였다. 사람들인 모인 자리에서 염백서가 사위인 오자장(吳子章)에게 서문 한 편을 쓰게 하자 오자장은 즉흥적으로 문장 한 편을 지어 보였고, 이어서 염백서가 사람들에게 붓과 종이를 나눠주며 모임을 위해 글 짓기를 청했으나 사람들은 염백서가 사위의 글 솜씨를 자랑하려고 한 뜻을 알아차리고 오자장의 글보다 나은 글을 쓸 자신이 없다고 하면서 짐짓 사양하였다. 그러나 왕발은 사양하지 않고 종이와 붓을 받아 사람들 앞에서 글을 써나갔다. 기분이 상한 염백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휘장 안으로 들어간 뒤 사람을 시켜 왕발이 지은 글을 알아보게 하였다. 염백서는 왕발이 쓴 첫 구절 豫章故郡, 洪都新府을 전해 들을 때만 해도 상투적이라고 생각했으나 이어지는 星分翼軫, 地接衡廬라는 대목을 듣고는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다가 落霞與孤鶩齊飛, 秋水共長天一色에 이르러서는 그만 역사에 길이 남을 천재로다! 라고 탄복의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고 한다. 당재자전(唐才子傳)에서도 이때의 일을 왕발이 흔쾌히 손님들 앞으로 나아가 붓을 들고 순식간에 써나갔는데 문장에 점 하나 더 찍는 일이 없어 자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勃欣然對客操觚, 頃刻而就, 文不加點, 滿座大驚)고 적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등왕각서를 다 쓰고 난 왕발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자 염백서의 사위 오자장(한 번 본 것은 잊어버리지 않을 만큼 총명하다고 소문이 난 사람이었다)이 화를 내면서 왕발의 시는 자기 것을 모방한 것이라고, 등왕각서는 자기가 이미 초안을 잡아둔 것이라고 하면서 왕발이 쓴 등왕각서를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낭송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놀라면서 왕발에게 의심의 눈길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왕발은 조금도 놀라는 기색 없이 오자장에게 물었다. 오형이 한 번 보면 잊지 않을 만큼 머리가 좋다고 하더니 과연 놀랍구려. 그러나 내 글은 아직 시가 한 편 남아있는데 어떤 내용인지 아시겠소? 오자장이 얼굴을 붉히며 아무 말도 못하는 사이 왕발은 들고 있던 붓을 힘차게 놀려 서문의 맨 끝에 시 한 편을 덧붙인 뒤 붓을 내려놓자 사람들이 탄복하며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고, 더불어 등왕각서가 왕발의 작품이라는 것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오자장은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총총히 자리를 떴다고 한다. (百度百科 참조)

 

*왕발(王勃) 650년 ~ 676년

당(唐) 초기의 문인으로 자는 자안(子安)이다. 문중자(文中子)를 지은 왕통(王通)의 손자로, 6세 때 이미 문장을 잘 지었고 17세에 유소과(幽素科)에 급제하였으나 자신의 재능을 믿고 오만하여 사람들의 질시를 받았다. 뒤에 관노(官奴)를 죽인 죄로 관직에서 물러났는데, 이 일로 교지(交趾)의 현령(縣令)으로 좌천되어 있던 아버지 복치(福畤)를 만나러 갔다가 돌아오던 중에 배에서 떨어져 죽었다. 그때 그의 나이는 26세였다. 시명(詩名)이 있어 양형(楊炯), 노조린(盧照鄰), 낙빈왕(駱賓王) 등과 함께 초당사걸(初唐四傑)로 불리며 당. 송대 팔대가의 화려한 한시의 황금기를 불러올 명 시인이었다. 왕발(王勃)이 교지(交趾)로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에, 홍주목(洪州牧)으로 있는 염백서(閻伯嶼)가 등왕각(滕王閣)을 중수(重修)하고 베푸는 연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때 염백서가 손님들에게 누대의 서문을 쓸 것을 청하자 왕발이 나서서 지은 글이 등왕각서이다. 북산이문(北山移文)과 함께 병려문(騈儷文) 가운데 대표적인 명문으로 꼽힌다.

 

등왕각서(등왕각의 서문) 전문

옛 남창군(南昌郡)이었던 이곳은 새로이 홍도(洪都)가 되었다.

별자리로는 익(翼), 진(軫)에 해당하는 땅으로 서쪽으로는 형산(衡山)에 접해 있고, 북쪽으로는 여산(廬山)에 접해 있으며 세 강이 옷깃처럼 두르고 다섯 호수가 띠처럼 둘러져 있다.

이곳은 형만을 누르고 구월을 끌어당기는 자리다.

이곳 물산의 정화는 하늘이 내린 보배이니 용천검의 광채가 견우성과 북두성 사이를 쏘았으며 인물은 걸출하고, 땅은 영기가 있다.

서유 태수 진번(陳蕃)이 걸상을 내주며 맞는다.

경치 좋은 주(州)와 군(郡)이 안개처럼 즐비하고 문채가 뛰어난 인물들이 밤하늘의 뭇 별처럼 찬란하게 활약하니 이곳 누대(樓臺)와 성 밑의 못은 초나라와 중화(中華) 사이에 자리하고 있고 이곳에 모인 많은 손님과 주인은 동남의 인물들이다.

도독 염공은 고상한 인망을 갖추어 기와 창을 앞세우고 멀리서 부임해왔다.

우문은 신임 태수로 부임하던 중에 이곳에서 수레를 멈추었다.

마침 십순의 휴가 날이라 훌륭한 벗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천리 먼 곳의 사람들도 맞아들이니 인품이 높은 친구들이 자리에 가득하다.

솟아오르는 교룡 같고 날아오르는 봉황새 같은 친구들은 맹학사는 문장의 대가이고 자줏빛 번개같고 차가운 서리 같은 지조를 갖춘 인물들은 왕 장군의 무기고처럼 유능하다.

우리 아버님이 현령이 되시니 가는 길에 유명한 이곳을 지나게 되었다.

어린 내가 무엇을 알아서 이 훌륭한 잔치를 만나겠는가?

 

때는 구월

계절은 가을이고 길에 고인 빗물은 다 마르고 차가운 못물은 맑고 안개는 피어 저문 산은 자색으로 빛나고 있다

길가에 말 네 필을 위엄있게 치장하여 높은 산으로 풍광을 찾아간다.

제자의 땅 장주에 임하니 선인의 옛 관저가 있었다.

중첩한 산봉우리들은 비취빛을 띠고 솟아있고 위로 솟아올라 높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나는 듯한 누각에 단청 빛이 흐르고 아래를 굽어보니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었다.

학이 노는 물가와 오리가 쉬는 물가는 섬을 둘러 끝없이 이어져 있고 계수나무 궁전과 목란 궁궐이 언덕과 산봉우리의 형세를 따라 줄지어 있다.

채색한 작은 문을 열고 조각한 용마루 얹은 누각을 굽어보니 산과 들은 광활하여 그것이 시야에 가득하고 시내와 못은 광대하여 보는 이의 눈을 놀라게 한다.

촌락이 땅에 늘어서 있어 종을 울려 모으고 솟을 걸어놓고 식사를 하는 큰 집안도 있다.

큰 배와 전함들이 나루터에서 왔다 갔다 하니 청작과 황룡을 그린 뱃고물이 보인다.

무지개 사라지고 비도 그치니 햇살은 구름 사이에서 드러난다.

저녁노을은 짝 잃은 기러기와 나란히 날고 가을 물빛은 높은 하늘과 같은 색이다.

고기잡이배에서 저녁에 노래 부르니 그 울림이 팽려의 물가까지 들려오고 기러기떼 추위에 놀라 날으니 그 소리가 형양의 포구까지 멀어진다.

아득히 읊조리며 구부리며 펴고 하니 편안한 흥취가 재빨리 날듯이 일어난다.

상쾌한 소리 들려오니 맑은 바람이 일고 고운 노랫소리 엉기어 흰 구름까지 닿는다.

유원의 푸른 대나무 그 기상은 팽택령 도연명의 술잔을 능가하고 업수가의 붉은 꽃은 그 빛이 임천내사의 붓을 비춘다.

오늘 이 자리가 네 가지 아름다움을 다 갖추고 두 가지 어려운 것도 함께 갖추었으니 하늘 중천까지 눈길 다 주고 한가한 날에 마음껏 즐겨 논다.

하늘은 높고 땅은 아득하니 우주가 무궁 광대함을 알겠도다.

흥이 다하면 슬픔이 오는 것이니 차고 비는 것에는 정해진 운명이 있는 것을 알겠다.

멀리 태양 아래 있는 장안을 바라보며 구름 사이에 있는 오군과 회계군을 가리켜본다.

지세가 다하니 남쪽 바다가 깊고 하늘 기둥은 높고 북극성은 멀기도 하다.

관산은 넘기가 어려우니 누가 길 잃은 사람을 슬퍼해주겠는가?

부평초와 물이 만났으니 이들 모두가 타향의 길손이로다.

제왕의 궁문을 그리워해도 보이지 않으니 어느 해라야 선실에서 봉명할까?

 

오호라

시운이 고르지 못하고 운명은 어긋나는 일이 많았다.

풍당은 등용되기 전에 늙기 쉬웠고 이광은 공적이 있어도 봉해지기 어려웠다.

굴원과 가의가 장사에 지내야 했음은 성군이 없었음이 아니었도다.

양홍을 바닷가에서 숨어살게 한 것은 어찌 밝은 시대가 부족한 것이겠는가?

내 믿는 바, 군자는 가난을 편안히 여기고 달인은 자기의 천명을 안다.

늙어질수록 더욱 강해진다면 어찌 노인의 마음을 알겠는가

가난할수록 더욱 굳세어진다면 청운의 뜻을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다

탐천의 물을 마셔도 상쾌함을 느끼고 곤궁함에 처해도 오히려 기쁠 것이다

북해가 비록 아득하여도 회오리바람을 타면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젊은 시절은 이미 지나갔지만 노년기는 아직 아니도다.

맹상은 성품이 고결하나 공연히 나라에 보답할 마음만 가졌고 완적은 미친 듯이 행동하였으니 어찌 길 끝난 시골에서의 통곡을 본받겠는가?

 

나 왕발은 삼척의 미천한 사람으로 일개 서생에 지나지 않는지라 벼슬을 청할 길 하나 없으니 종군의 약관으로 때를 기다리고 붓을 던질까 생각해 보았으며 종각의 장풍을 부러워도 했다.

백 살이 될 때까지 벼슬할 생각 버리고만리 먼 곳에 계신 부모님에게 효를 받들리라.

나는 사 씨 집안에서 받드는 보배로운 나무는 아니지만 맹자처럼 좋은 이웃은 만나리라 훗날 뜰을 종종걸음으로 지날 때 공자의 아들인 이가 배운 것처럼 나도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으리라.

오늘 소매를 받쳐 들고 용문에 기탁하니 기쁘도다.

양운을 만나지 못하여 능운부를 어루만지며 스스로를 애석해한다.

종자기는 이미 만났으니 흐르는 강물을 연주하매 무엇이 부끄러운가?

 

오호라

명승지는 항상 있지 않고 성대한 잔치는 다시 맞기 어렵나니 난정은 이미 버려졌고 재택은 폐허가 되었도다.

이별에 임하여 말씀을 올림은 다행히 큰 잔치에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높은 곳에 올라 부를 짓는 것은 여러 공들이 소망하는 바라 감히 저의 보잘것 없는 정성을 다하여 공손히 짧게 지으니 한 마디 부를 고루어 사운으로 서문과 함께 시를 완성하였다.

등왕각은 강가에 서 있어도 패옥소리 방울소리 가무는 그친 지 오래다.

아침이면 단청한 서까래를 남포의 구름이 스쳐가고 주렴을 걷으면 해질녁을 비에 젖는 서산이 보이리.

못물 위에 흰 구름은 유유히 떠가는데 물건은 바뀌고 별자리 옮겨가며 세월은 그 얼마를 흘러갔던가 누각의 왕자는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주인 잃은 다락 난간 밑을 장강은 구비쳐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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