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때 내가 살아야 할 어떤 가치를 갖지 못할 정도로 절망적인 시간이 있었다.
살려 달라고 빌었고 내가 대신 죽겠다고 빌었지만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30여년간 나만 믿으면 온세상의 안위를 지켜줄듯이 온갖 위세를 떨며 찬양 받고 섬김 받은 아내의 신은 그 간절한 순간에는 꼭 꼭 숨어 침묵했다.
그는 22살의 짧은 생을 살고 하늘의 별이 되었다.
그 감당치 못할, 영혼도 죽고 육신은 도려내고 베이고 쓰리고 아픈 그 많은 날들을 나는 틈만 나면 걸었다.
눈뜨면 걸었고 밤에도 걸었다.
길이 있으면 걸었다.
산길을. 숲속을, 해변을, 거리를....
때로는 사람속을 걸었지만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슬픔도 사유도 없이 그냥 하늘을 보고, 나무를보고, 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가슴 한쪽을 도려내고 남아있는 그 가슴에 그를 묻었지만 나는 지금도 살아 있다.
그 사망의 음침한 꼴짜기에서 그 절망의 벽 앞에서 내가 할수있는 내가 살아 날수있는 내가 택한 길이 걷기였다.
그러면서 나는 조금씩, 조금씩 살아났다.
고통이 줄어들고 영혼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걷기는 치유의 길이고 생명을 살리는 길이다.

□ 니체는 왜 그토록 걸어야만 했는가
니체가 죽은 지 올해 116년이 되지만 니체에 대한 관심은 식을 줄을 모른다. 그가 한 평생 남긴 20여권의 책을 다 읽어도 그의 정신적 철학적 깊이를 알 수 없다는 것이 니체 연구자들의 얘기지만 지금도 그의 유령은 우리 곁을 떠돌고 있다. 그 만큼 니체의 사상, 철학적 사유체계가 깊고 넓다는 뜻일 게다.
니체는 허무주의 철학자로 불리는 가운데 은둔생활 10년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등 2십여권의 저서를 남겼다. 니체는 지적양심, 계몽주의, 현대철학의 시작을 알렸다.
니체 자신의 글쓰기가 걷기와 깊은 관련성을 갖는다. 니체는 “살아간다는 것은 떠도는 것”이라며 방랑 생활 속에 많이 걸었다. 니체는 자면서도 자는 것이 아니라 꿈을 꾸며 창조적 글쓰기를 하였다. 현실의 시간을 넘어 무의식까지 확장하는 그의 사유체계는 심오했다. 이러한 삶은 바로 걷기에서 나왔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말했다에서 “나는 방랑하는 자이자 산에 오르는 자다” 라며 방랑 속에서 자신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니체는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기로부터 나온다”(All truly great thought are conceived by walking)했을 정도다. 니체는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 것이지만 걷기를 통해 사유하며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실존의 이치를 깨달으려고 했다.
1879년 9월에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밝혔다.
“겨우 몇 줄만 빼놓고 전부가 길을 걷는 도중에 생겨났으며 여섯 권의 공책에 연필로 휘갈겨 썼다네”
따라서 이 글은 걷기의 가치가 새삼 부각되고 있는 요즘 니체의 발걸음을 통해 강조하고 사유한 내용들 - 가치, 자아, 건강- 을 찾아보는 것, 이를 위해 니체를 읽고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그가 즐겨 걷고 사유했다는 배경을 살펴보는 것도 현대인들에게 유익하리라.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니체는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등 여행지, 걷는 장소를 찾아다녔다. 유토피아와 대비되는 현실화된 유토피아적인 공간을 의미하는 헤테로토피아을 찾아다니며 걷고 또 사유하며 글을 썼다. 우리가 이런 니체와 같이 걸을 수 있다면 현 시대의 어려움, 고통을 넘어 삶의 지혜와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거칠게 나마 이 글을 준비한 것이다.
걷기의 목적은 뭔가를 찾기 위한 것이다. 거의 모두가 금욕과 육신의 고통을 영혼의 성숙으로 삼고 걷는 것이다. 단순한 도보여행이 아닌 걸으면서 깨닫고 욕망을 극복하는 고행의 길도 있다. 걷는 사람들 중에는 정처 없이 걷는 사람, 고독해서, 울고 싶을 때, 질병을 치유하기 위해서 걷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높고 낮은 길을 걷고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누구나 걷지만 물리적으로 걷는 것은 맞지만 사유하는 측면 혹은 철학적으로 생각 하기는 다르다. 걷기란 주체는 보편적인 행동이지만 특별한 의미는 각자의 삶의 태도에서 많이 다르다. 니체 역시 건강을 위해서 사유하기 위해서 걸었다. 걷는 장소가 문화적 철학적 인식론적 시작점이 되었다. 니체는 걷기를 무슨 운동처럼 죽기 살기로 하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육체의 질병을 치유하면서 동시에 사유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곳을 찾아 천천히 걸었다.
□ 니체는 걷기를 어떻게 보았는가.
니체에게 있어서 걷기는 신체활동의 조건만이 아닌 몸의 본질적인 요소였다. 니체는 보다 높은 몸의 발전 가능성, 즉 보다 높은 자기실현의 가능성을 놓고 자신의 의지로 몸을 유지하려고 했다. 자기 실천 속에서, 자기 극복 속에서 보다 높은 몸을 만드는 것이 주요 과제였다. 그에게 몸은 생리적 심리적 현상일 뿐만 아니라 사유, 느낌, 욕구의 역동적인 복합이었다. 니체의 사유와 걷기를 통한 자기 찾기는 개성화, 자기화, 자기실현에 있었다.
이런 목표를 실현해가는 것이 다름 아닌 걸으면서 사유하기다. 길을 걷는 육체가 드넓은 공간을 응시하며 휴식을 취하듯 글쓰기는 가벼운 휴식에 불과할 뿐이다. 나아가 니체는 자신의 발로도 글을 쓴다고 했다. 발은 어쩌면 가장 확실한 뛰어난 증거이다. 발이 읽으면서 귀를 기울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문제는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었다. 여기서 니체의 건강 철학 내지 몸의 인간학이 수립된다. 철학자를 ‘영혼의 의사’로 규정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걷기는 생명과 치유의 길이고 철학의 목표이기도 했다.
거듭 강조하는 것이지만 니체는 매일 걸었다. 니체 자신이 살아 온 마을을 중심으로 하루 8시간까지, 그리고 생모리츠 엥가딘의 고산들을 자주 걸으며 자연과 자신의 원소를 발견했다고 했다. 니체는 1879년 3월에 이르러 건강이 악화되면서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 적인"책이 나오고, 이어"방랑자와 그의 그림자"가 발간된다. 특히 방랑자와 그의 그림자는 그가 몸이 약해지면서 스위스 고지 엥가딘에서 나온 글이다. 그는 여기서 지내는 동안 프란츠 오베르크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나는 이제 엥가딘을 내 것으로 만들었네, 아주 내게 꼭 맞는 곳에 온 것 같군, 이런 유형의 자연과 잘 맞아 이제 고통이 좀 덜 하다네”
뿐만 아니라 걷기는 그에게 있어서 건강철학으로 확대 되었다. 그는 “어떤 숙명을 맞이하게 되던 내 무엇을 체험하게 되던 그 속에는 반드시 방랑의 산 오르기가 있으리라,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을 체험할 뿐이다“라면서 삶 자체가 본질적으로 '힘에의 의지'로 받아들인다. 삶은 근본적으로 성장, 지속, 힘들의 축적, 힘에 대한 의지로 받아들인다. 그는 힘의 성장 형식으로 대지와 현실적 삶의 세계로 확장시킨다.
또한 니체는 우리의 건강과 정신을 지배하는 것은 장소와 기후라고 생각 했다. 기후는 신진대사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 순조로운 신진대사는 정신이 활발한지 마비되어 있는지를 가늠케 한다. 동물적인 활기가 넘치면 최고의 정신을 유지하며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고 믿었다. 물론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니체는 바젤, 소렌토, 바트벡스, 쿠르, 리바, 베네치아 등 여러 곳을 찾아다녔다. 고독한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걷는 길이 설사 멀더라도, 때로는 가파른 길도 있었지만 인내를 가지고 계속 걸으며 글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특별히 니체가 강조하는 ‘영원회기’역시 걷기 체험에서 나온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보면 1881년 8월 고향인 실스 마리아와 주를레에 있는 실바플라나 호수가를 걷고 있었다. 이 근처에서 피라미드처럼 우뚝 서 있는 거대한 바위 옆에서 멈춰서 ‘영원회귀’ 개념을 찾았다고 했다. 그 곳에서 여름과 가을을 보내면서 ‘운명애’(amor fan)를 함축하는 ‘영원회귀’에 관한 틀이 짜여졌다. 니체의 사유의 바탕이 된 ‘영원회기’ 개념은"즐거운 학문"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 니체는 어떻게 걸었는가.
니체는 오랫동안 한곳에 조용히 앉아 있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는 “숙면을 맞이하게 되던 내 무엇을 체험하게 되던 그 속으로 방랑이 있고 산 오르기가 있으리라.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을 체험할 뿐이니”라고 외쳤다. 차라투르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1883년 이후 프랑스 지역 니스 지역을 걸으며 차라투스트라 자체에 대한 첫 아이디어가 나왔다. 니체가 좋아하던 프랑스 해안도시인 니스 뿐만 아니라 에즈 지역을 걸으면서 변화와 도전을 즐겼다. 에즈에는 ‘니체의 산책로’(Nietzsche's Footpath) 라는 이름이 붙은 작은 길이 있을 정도다. 그야말로 그는 걸으면서 높은 고개를 만나는 것, 넘으면 또 다른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것, 높은 산에 오르면 발밑에 새로운 공간이 펼쳐진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이 때의 장엄한 풍경이 걷는 니체에게 영감을 주었음은 물론이다. 허무함 속에서 풍성한 사유를 할 수 있었던 그였다. 이와 관련해 니체의 걷기는 3가지의 형태로 정리 할 수 있다.
첫째, 건강의 회복과 치유의 반복적 걷기였다.
35세 이후건강이 악화되면서 쾌적한 곳을 찾아 끊임없이 여행하며 걸었다. 타고난 약체의 몸을 의식해 건강유지가 최대목표였다. 니체는 30년간 질병에 시달렸고 30년 가까이 치료에 매달렸다. 그러면서 그는 건강하지 못한 자신의 처지에서 몸의 귀중함, 생명의 한계를 깨닫고 반복적으로 걸었다. 그리고 니체는 걸으면서도 건강한 삶이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제시한 점에서 삶의 철학자, 혹은 건강철학자로 평가 받게 된다. 그는 자연에서의 치유의 가능성을 강조했던 철학자답게 이렇게 외쳤다.
“대지는 이제 치유의 장소가 돼야 한다. 대지의 주변에는 이미 새로운 향기 치유를 가져 오는 새로운 향기가 감돌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희망이“
두 번째, 깊은 사유 속에 자기 찾기의 걷기였다. 지성과 긍지로 자신의 생명력을 끌어올리는 걷기가 최우선이었다. 니체에게 가장 중요한 탐구대상은 자기 자신이었다는 사실에서 “운명아 비켜라, 용기 있게 내가 간다”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참고 지내는 인내심이 깊게 자리 잡았다. “자신의 지배자는 오직 자신뿐이라는 것, 이 기쁨을 지속시키고 싶다면 서서히 거리를 좁히는 고뇌의 몸부림이 피할 수 없는 숙명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세 번째는 고향의 낮은 마을로부터 점차 높은 산으로 들어가는 걷기였다. 가장 깊은 곳, 높은 곳으로 찾아가는 길을 택했다. 니체는 자신의 10년간의 질병이 잘 못된 생활환경이라는 점을 깨닫고 나움부르크, 슘프르타, 튀링겐, 라이프치히, 바젤, 제노바, 에즈, 베네치아 지역 등 다른 장소를 찾아 걸었다. 그러면서 니체는 “아직도 발길이 닿지 않은 천개의 오솔길이 있으며 천개의 건강법과 천개의 숨겨진 삶의 섬들이 있다.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채로 무궁무진하게 남아 있는 것이 인간이며 대지다“(장희창 역, 134)라며 색다른 곳을 찾아 걸었다. 그야말로 니체는 어느 한곳에 오래 갇혀 있자 못하는 방랑자였다.
하지만 인간은 모든 것을 황금으로 바꾸는 능력을 갖춘 신화속의 ‘미다스 왕’(King Midas)이 될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모든 생명을 멸하게 마련이다. 니체가 지식, 내적인 성장은 이뤘지만 생명을 가늠하는 건강은 지킬 수가 없었다. 죽음을 멈출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땅으로 언제 하직 할지 모르는 것이 인간의 생명이다. 니체는 1894년 가을부터 극도로 쇠약해져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다가 1899년 1월 정신적 질병으로 쓰러진다. 당시 사람들은 ‘신의 죽음’을 외치던 니체를 ‘미친 사람’이라고 비난 했는데 실제로 니체 자신이 ‘미친 사람’이 되어 죽는다. 1900년 8. 25일 오전에 56세 나이로 바이마르 정신병원에서 숨졌다.
□ 걷기, 고독, 자연, 음악, 글쓰기로 살아온 니체
니체에게 질병은 생의 마지막 10년을 괴롭힌 광인과 같은 착란 속에서 생을 마치게 됐다는 사실은 니체를 읽는 사람이라면 대충 아는 사실이다. 그는 두통과 어지럼증으로 몇 일간 토해야 했으며 친구들과 대화하기조차 어려웠다. 니체를 평생 괴롭힌 질병은 건강에 있어서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숙명이었다. 스피노자가 말 했듯이 니체가 신경적 소심함, 건강하지 못한 이유로 은둔자의 길을 택했다. 비이성적 과열 상태에서 처절한 고통의 나날을 보냈던 그였다. 그런 가운데 니체는 한 평생의 고통, 집착(몰입), 걷기, 그리고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의 철학 세계를 구축했다. 니체는 허무함 속에서 재산, 여자, 어떤 지위도 갈망 하지 않았다. 그가 좋아 했던 것은 오직 고독, 자연, 음악, 책, 글쓰기였다.
그야말로 니체의 걷기는 철학 실천의 길이었다. 걷기와 건강, 사유를 강조한 철학자도 드물 것이다. 앞에서 니체가 산 오르기를 즐겼다는 사실을 수차례 언급해지만 니체는 걷기를 숙명처럼 받아들였다. “나는 조금 지치지 않고서 족히 일고여덟 시간은 산에서 돌아다닐 수 있었다. 나는 잘 잤고 많이 웃었으며 내 활력과 인내심은 완벽했다.” 고 했다. 한마디로 걷기는 자기 몸의 건강 강화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니체의 저작물들에는 영혼의 치유, 허구(가면)의 극복, 피하고 싶은 고통, 삶의 의미와 해석, 자기발전, 치료적 언어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한마디로 니체는 자기존재의 불안정성을 극복하려는 ‘삶의 철학’을 통해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였던 철학자다. 철학은 인간의 건강한 문화를 만드는데 기여해야 한다고 했다.(비극의 탄생) 우리 존재의 비밀을 알아내는 것, 걷기에서 느끼는 자연적 사고로 세상을 보려고 했다. 아니 니체는 그런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했다. 동시에 니체는 우리에게 세상자체가 정신병동 같은 현실에서 누구나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기 책임이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당부하고 있다. 그는 《이 사람을 보라》에서 “너는 네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삶의 의미를 깨닫고 자유인, 성숙한 태도로 살아야 한다고 우리에게 당부한다.
말인즉 사람은 누구나 비슷한 무계의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주 걷는 필자에게는 니체의 걷기가 좋은 ‘글감’이었다. 이 글에서 니체가 치명적인 질병 속에서, 인간 소외 속에서, 사랑과 인간관계 결핍에서 오는 ‘인간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걷기를 즐겼다는 사실을 필자는 말하고 싶었다. 사실 니체의 작품 속에는 철학적 사유전체가 병에 대항하며 건강을 추구하고 또한 병든 몸을 극복하고자 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게다가 니체가 걸으면서 만나는 장소들, 자연향기, 색채, 소리, 고요함 등 모든 순간에서 그가 추구하는 ‘자연인’ 답게 살았음을 찾아보게 된다.
그러나 필자는 니체의 깊고 넓은 사상체계를 논할 자격은 없다. 근대성의 해석, 종교(기독교)비판, 허무주의, 디오니소스, 영원회귀, 초인(극복인), 자기 운명(운명애), 생명과 치유 등 수많은 본질적 논제들을 다 이해 할 수도 없다. 다만 그가 걸으며 사물과 만나고 감동 받고 꿈꾸고 상상하는 것, 시간과 장소에 대한 소통을 강화하는 것, 그리고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집약된 니체의 저작을 만나면서 노년기에 걷기와 철학, 건강 철학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나에게 큰 수확이다.
끝으로 니체 자신이 생명의 쇠잔함을 느끼며 마지막 ‘밤 산책자의 노래’를 통해 읊은 외침이 노년기 내 마음 속에 와 닿는다.
“이제 나는 이미 죽은 존재다. 모든 것은 끝났다. 거미여! 너는 왜 나의 둘레에 거미줄을 치는가? 피를 원하는가? 아아! 이슬이 내린다. 때가 왔다”(차라투스트 라는 이렇게 말했다)
출처 :니체의 걷기: 니체는 왜 걸어야 했는가 : 네이버 블로그
니체, 길 위에서 사유가 되다
프리드리히 니체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의 책장을 넘기는 것이 아니라 그가 걸었던 길을 따라 상상해보는 일일지 모른다. 니체는 철학자이기 전에 걷는 사람이었다. 아니, 그는 걷지 않으면 철학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사유는 언제나 두 발에서 시작되었고, 그의 문장은 늘 이동 중에 태어났다. 니체에게 걷기는 취미도, 건강 관리도 아니었다. 그것은 생존의 방식이자 사유의 조건이었다. 니체의 철학을 이루는 문장 하나하나는, 고요한 서재가 아니라 바람과 통증, 숨가쁨과 고독 속에서 길어 올려진 것들이었다.
니체는 평생 병약했다. 만성적인 두통과 위장병, 심한 소화 장애, 시력 저하와 신경 쇠약은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그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고, 밝은 빛과 큰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이런 상태에서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있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밀폐된 강의실에서 정해진 시간 강의를 이어가는 대학 교수라는 직업은 그의 몸에겐 지나치게 가혹한 요구였다. 결국 그는 스위스 바젤 대학의 교수 직을 내려놓는다. 서른을 갓 넘긴 나이였다.
이 결정을 두고 동시대인들은 그를 불행한 천재, 몰락한 학자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니체에게 그것은 몰락이 아니라 탈출에 가까웠다. 제도와 규율, 시간표와 강단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견딜 수 없는 삶의 형식을 버렸고, 대신 불확실하지만 자기 몸에 맞는 삶을 선택했다. 걷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었기에, 그는 길 위로 나섰다. 그 선택은 그의 철학만큼이나 급진적이었다.
니체는 이후 정착하지 않는 삶을 산다. 스위스의 실스마리아, 이탈리아의 제노바와 토리노, 프랑스 남부의 니스 등을 계절에 따라 옮겨 다녔다. 기차는 이동 수단이었지만, 사유는 언제나 도보로 이루어졌다. 그는 하루에 몇 시간씩 걸었다. 호숫가, 산길, 도시 외곽의 비탈길을 오르내리며 혼자 걸었다. 걷는 동안 그는 자신의 몸 상태를 세밀하게 관찰했고, 통증이 심해지면 속도를 늦췄으며, 머리가 맑아질 때까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걷기는 그에게 사치가 아니라 처방이었고, 약이자 훈련이었다.
니체는 앉아서 오래 생각하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자신의 노트와 편지에서 반복해서 말한다. “앉아 있는 동안 떠오른 생각은 믿지 않는다.” 그의 기준에서 진짜 생각은 몸을 통과한 것이어야 했다. 발걸음의 리듬과 호흡의 흐름, 근육의 피로와 회복 속에서 떠오른 생각만이 살아 있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의 철학은 언제나 단정적이기보다 격렬하고, 체계적이기보다 파편적이다. 그것은 미완의 약점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사유의 흔적이다. 니체의 문장은 걷는 문장이다.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며, 때로 방향을 바꾸고, 때로 스스로를 부정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책상 앞에서 계획적으로 쓰인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산길에서 태어났다. 니체는 이 작품의 상당 부분을 실스마리아 주변을 걸으며 구상했다. 그는 노트에 짧은 문장과 이미지, 격언 같은 문구들을 적었고, 그것들이 나중에 하나의 흐름으로 엮였다. 그래서 이 책은 논문처럼 논증하지 않고, 설교처럼 가르치지도 않는다. 대신 예언처럼 말하고, 시처럼 울린다. 니체의 사유는 설명하기보다 부딪치고, 설득하기보다 흔든다. 그것은 걷는 동안만 가능한 방식의 언어다.
니체에게 걷기는 고독의 형식이기도 했다. 그는 무리를 이루어 걷지 않았다. 대화 속에서 생각을 정리하는 유형의 철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혼자 걸었다. 그러나 그 고독은 폐쇄적이거나 자기 연민적인 고독이 아니었다. 그는 걷는 동안 자신과 대화했고, 동시에 세계와 접속했다. 사회적 역할과 기대, 도덕적 요구에서 벗어난 상태에서 그는 비로소 인간이라는 존재를 낯설게 바라볼 수 있었다. 니체의 사유는 언제나 ‘거리 두기’에서 시작된다. 걷기는 그 거리를 가능하게 했다.
니체가 자주 걸었던 해변 절벽 마을인 프랑스 '에즈'. 니체는 "힘든 오르막길을 걸으면서 '차라투스트라'의 결정적인 장을 구상했다고 한다. '니체의 산책로'란 이름으로 약 4km 길이의 언덕길이 조성됐다. 편도 1시간 30분 걸린다.
이 고독 속에서 니체는 ‘초인’이라는 개념을 사유한다. 초인은 흔히 오해되듯 폭력적이고 지배적인 인간상이 아니다. 니체의 초인은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넘어서는 존재다. 과거의 자신, 주어진 가치, 익숙한 도덕을 반복적으로 의심하고 갱신하는 인간이다. 그리고 그 넘어서기는 추상적인 결단이 아니라 일상의 반복 속에서 이루어진다. 매일 같은 길을 걷되, 어제와는 다른 생각을 품는 것. 니체에게 초인은 그렇게 길 위에서 형성된다.
니체는 자연을 낭만적으로 소비하지 않았다. 그는 산과 숲을 단순한 위안의 공간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은 그에게 시험의 장소였다. 가파른 오르막과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 몸의 피로와 통증은 그를 끊임없이 시험했다. 그는 이 시험을 통해 자신이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 니체 철학의 핵심 개념인 ‘힘에의 의지’는 추상적인 욕망이나 지배 본능이 아니라, 바로 이런 몸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이 아니라, 더 오래 견디고,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에 가깝다.
이 점에서 니체의 걷기는 수행에 가깝다. 그는 의도적으로 자신을 단련하려 하지 않았다. 금욕이나 고행을 미덕으로 삼지도 않았다. 그러나 걷는 과정에 그는 자연스럽게 단련되었다. 그는 고통을 피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고통을 숭배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는 고통을 사유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고통 없는 사유는 얕다고 보았고, 몸을 거치지 않은 생각은 허약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의 철학은 불편하다. 쉽게 위로하지 않고, 간단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 때문에, 그의 사유는 오늘날까지도 살아 있다.
니체가 살던 시대는 근대 문명이 절정으로 치닫던 시기였다. 이성, 진보, 과학, 도덕은 거의 종교처럼 숭배되었다. 인간은 합리적 계획과 제도를 통해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니체는 그 모든 가치가 삶의 몸통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를 보았다. 그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지만, 그것은 단순한 무신론의 선언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과 분리된 가치 체계, 몸과 감각을 무시한 도덕에 대한 고발이었다.
걷는 동안 그는 인간이 만든 규범과 도덕이 얼마나 삶의 리듬을 억압하는지를 감각했다. 정해진 시간에 일하고, 정해진 방식으로 생각하며, 정해진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삶. 니체는 그런 삶이 인간을 강하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병들게 만든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철학을 가르치기보다 흔들고자 했다. 그의 글이 종종 오해받고, 극단적으로 소비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독자를 안심시키지 않는다. 대신 길 위로 끌어낸다.
니체의 문장은 독자에게 요구한다. “너 자신이 이 문장을 따라 걸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더 부족하다. 그의 철학은 독자의 삶의 리듬을 바꾸기를 요구한다. 스스로 걷지 않는 독자는 니체를 끝내 이해할 수 없다. 그는 독자를 사유의 동반자로 만들고자 했지, 제자로 만들고자 하지 않았다.
오늘날 니체를 다시 읽는다는 것은, 그의 개념을 해석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가 선택했던 삶의 형식을 다시 묻는 일이다. 우리는 너무 오래 앉아 있었다. 너무 많은 시간을 고정된 자세로 보냈고, 생각은 점점 몸과 분리되었다. 화면 앞에 앉아 머리만으로 사유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더 피로해졌다. 니체의 걷기는 이런 상태에 대한 하나의 급진적인 처방이다. 생각이 막힐수록, 더 오래 걸어야 한다는 그의 태도는 지금도 유효하다.
한국 사회에서도 니체의 걷기는 낯설지 않은 울림을 준다. 성과와 속도가 삶의 기준이 된 사회에서 걷는다는 것은 뒤처지는 일처럼 보인다. 빨리 이동하지 못하는 사람, 빨리 결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은 실패자로 간주된다. 그러나 니체는 묻는다. “빠르다는 것은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인가.” 방향 없는 속도는 소진을 낳을 뿐이다. 걷는 속도는 느리지만, 방향을 사유할 시간을 준다. 니체가 길 위에서 붙잡았던 것은 바로 그 시간이었다.
니체는 결국 정신의 붕괴를 겪는다. 토리노에서 말에게 매달려 울던 장면은 그의 삶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남았다. 그래서 그의 삶은 흔히 비극적으로 끝났다고 말해진다. 그러나 그를 단순히 실패한 철학자로 기억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그는 자신의 몸이 허락하는 한 끝까지 걸었고, 생각했고, 썼다. 그는 앉아서 안전하게 철학하지 않았다. 대신 몸을 걸고 사유했다. 그 위험 속에서 그의 철학은 태어났다.
니체의 걷기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우리는 얼마나 몸을 통과한 생각을 하고 있는가. 걷지 않는 사유는 편리하지만, 쉽게 굳어진다. 반면 걷는 사유는 불편하지만, 살아 있다. 니체는 그 불편함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오늘날까지도 우리를 흔든다. 니체의 걷기는 단순한 생활 습관이 아니라, 현대사회가 잃어버린 사유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그는 왜 그토록 걸어야 했는가를 묻는 순간,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앉아 있게 되었는지를 함께 묻게 된다.
프리드리히 니체와 그의 어머니(왼쪽). 평생 ‘자유정신’을 옹호하며 가족, 사회, 국가 등 모든 공동체적 삶을 비판했던 극단적 개인주의자 니체는 나이 들어 정신 질환으로 어머니와 여동생의 보살핌을 받게 된다. 위키피디아
현대사회는 속도와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 생각은 빠를수록 좋고, 결정은 즉각적일수록 유능하다고 여겨진다. 우리는 이동 시간을 최소화하고, 몸의 개입을 제거하며, 머리만으로 사고하는 환경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그 결과 생각은 점점 많아졌지만, 깊어지지는 않았다. 니체의 걷기는 바로 이 지점에 우리를 멈춰 세운다. 그는 묻는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왜 우리는 더 피로해지는가.
니체에게 걷기는 사유의 속도를 늦추는 행위였다. 느린 속도는 단순한 지연이 아니라 방향을 점검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는 목적지를 향해 서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걷는 과정에 목적 자체를 의심했다. 이는 목표 중심의 현대사회에 대한 중요한 반론이다. 우리는 너무 자주 ‘어디로 가는지’보다 ‘얼마나 빨리 가는지’에 집착한다. 니체의 걷기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를 다시 전면에 세운다.
또한 니체의 걷기는 몸의 복권을 의미한다. 현대의 사유는 몸을 배제한 채 이루어진다. 감각은 방해물로 취급되고, 통증과 피로는 관리 대상이 된다. 그러나 니체는 몸을 제거한 사유를 불신했다. 그는 몸을 통과하지 않은 생각은 현실을 견디지 못한다고 보았다. 오늘날 정신적 소진과 무기력, 공허감이 만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생각은 넘치지만, 몸과 단절된 생각은 삶을 지탱하지 못한다.
니체가 카를 폰 게르스도르프에게 보낸 편지, 실스마리아, 1883년 6월 18일
니체의 걷기는 고독의 의미도 다시 묻는다. 현대사회에서 고독은 실패나 결핍으로 해석되기 쉽다. 그러나 니체에게 고독은 사유의 조건이었다. 그는 혼자 걷는 시간을 통해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과 언어에서 잠시 벗어났다. 그 고독 속에서만 기존 가치에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이는 끊임없는 연결과 노출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생각은 언제나 거리에서 시작된다.
무엇보다 니체의 걷기는 삶에 대한 태도다. 그는 고통을 제거하려 하지 않았고, 고통을 미화하지도 않았다. 다만 고통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현대사회는 불편함을 즉각 제거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삶의 밀도 역시 함께 제거한다. 니체의 걷기는 말한다. 불편함을 견디는 만큼, 삶은 깊어진다고.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대표작인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1818). 이 작품은 니체의 철학이 등장하기 수십 년 전에 그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니체의 사상을 시각적으로 가장 잘 구현한 예술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니체의 대표 저서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
결국 니체의 걷기가 현대사회에 주는 가장 큰 의미는 이것이다. 생각을 바꾸기 전에 먼저 걸어야 한다는 것. 삶의 리듬을 바꾸지 않고서는 사유의 내용도 바뀌지 않는다. 니체는 철학을 이론으로 남기지 않았다. 그는 몸으로 살았고, 두 발로 사유했다. 그 점에서 그의 걷기는 지금도 여전히 급진적이다.
이 연재에서 니체는 단지 한 명의 철학자가 아니다. 그는 걷는 삶이 어떻게 사유를 바꾸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극단적인 사례다. 다음 회에서는 니체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걷기를 실천했던 또 다른 인물을 만날 것이다. 규칙과 반복 속에 걷기를 삶의 윤리로 만들었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걷기의 또 다른 얼굴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계속 길 위에 있을 것이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러나 같은 질문을 품고. (글 : 박철 민들레 시민기자)
출처 : 니체, 길 위에서 사유가 되다 < 생명·생태·평화 < 기획·연재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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