雨荷(우하) 비속의 연잎
저초팔백곡( 貯椒八百斛) 후추 팔백 가마를 쌓아 두고서
천재소기우(千載笑其愚) 천 년 동안 그 어리석음은 웃음거리가 되었네
여하벽옥두(如何碧玉斗) 어떤가, 푸른 옥으로 된 됫박으로
경일량명주(竟日量明珠) 하루 종일 고운 구슬을 담고 또 담음이.
----- 최해(崔瀣)-----
註.
荷(하) : 멜. 여기서는 연잎을 뜻함
椒(초) : 후추
斛(곡) : 10斗(두) 들이 그릇 또는 용량단위
碧玉斗(벽옥두) : 푸른 옥으로 만든 됫박. 여기서는 푸른 연잎을 말한다.
竟日(경일): 온 종일.
量(량) : 가득차다. 담다.
明珠(명주) : 고운 구슬.
위의 詩는 이맘 때 어느 비 오는 날 빗물이 연잎에 떨어져 뒹굴다 빗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연잎이 고개를 숙이면 연잎에 있던 물방울이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고 고려시대 문인 최해 선생이 지은 詩다.
내리는 빗방울은 맑은 구슬이 되어 푸른 연 잎 위에 방울 방울 굴러 떨어지고, 빗물이 모이면 무게를 견디지 못한 연 잎이 한 쪽으로 기울어지며 고였던 빗물을 아무른 미련 없이 연못으로 쏟아 붓는다.
쉼없이 비가 내리는 날,
연못을 가득 채운 연 잎은 저마다 고인 빗물을 연이어 쏟아내며 됫박질 하는 정경을 당나라 정승 원재(元載)의 탐욕에 빗대어 하늘에서 떨어지는 빛나는 구슬을 玉됫박으로 진 종일 하염 없이 받아서는 쏟아버리고 또 쏟아버리는 연잎의 무욕(無慾)을 아름답게 묘사한 詩이다.
이 詩의 배경은 욕심 많았던 당나라 정승 원재(元載)로 하고있다. 그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뇌물로 엄청난 재물을 모았다. 그가 죽은 뒤 창고를 열자 후추(山椒)가 800 가마, 기름(種油)이 500 말(斗)이 나왔다고 한다. 이를 전량 나라에서 몰수했다. 얼마나 살겠다고 후추를 800 가마를 쌓아 두었을까? 당시는 후추 한 알의 무게가 금의 무게와 같은 값어치 였다고 한다.
700여년 전 공직의 지위를 이용하여 800가마의 후추와 500말의 산초기름, 몇 년 치의 곡식을 뇌물로 쌓아둔 인간의 한없는 욕심이 지금 이 시대에는 그저 한 낱 고사성어에 불과할까? 지금 이 순간도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온갖 법을 이용하고 잔머리를 굴려 발악을 하는 인간들이 후추 800가마, 기름 500말을 쌓아놓은 당나라 정승 원재와 무엇이 다를까? 내 입장에서는 창고가 얼마나 커야 800가마의 후추와 500말의 기름을 쌓아 놓을수 있을런지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최해는 이 詩를 통해 끝이 없는 인간들의 탐욕을 가득 담으면 이내 욕심없이 쏟아 버리는 연잎에 빗대어 한껏 비웃고 조롱하고 있다.
-生의 무게는 욕심의 저울 위에서 판가름 난다-
연꽃(蓮花) 은 부용(芙蓉), 부거(芙蕖),하화(荷花), 뢰지(雷芝)라는 다른 이름이 있으며,
잎을 하(荷),
줄기를 가(茄)라 하며,
뿌리는 우(藕),
속은 적(的),
꽃이 피기전 봉오리를 함담(菡萏),
꽃이 핀 것을 연(蓮)이라 한다.
원산지(原産地)는 열대 아시아 이고 7-8월 경에 꽃이 피고 10월 경에는 그 꽃씨가 익는다.
최해(崔瀣)
고려시대 문신. 자는 언명보(彦明父)· 수옹(壽翁), 호는 졸옹(拙翁)· 예산농은(猊山農隱). 최치원의 후손이며, 민부의랑을 지낸 백윤(伯倫)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대호군 임유(任綏)의 딸로 진양군부인(晉陽郡夫人) 임씨이다. 대대로 경주에서 산 전형적인 지방 사대부가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영리하고 시문에 능해 9세에 시를 지을 줄 알았다. 17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성균학관을 거쳐 예문춘추검열 등 여러 벼슬을 지냈다. 34세에 장흥고사로 있다가 원(元)나라에 파견되어 이듬해인 1321년(충숙왕 8) 원나라의 과거에 합격하여 요양로개주판관으로 임명되었다. 5개월 만에 사퇴하고 고려에 돌아와 예문응교·검교·성균대사성까지 지냈다.
성격이 강직하고 타협할 줄 몰랐기 때문에 조정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말년에는 사원(寺院)의 밭을 빌려 농사를 지으며 저술에 힘썼다. 첫 부인은 검교평리(檢校評理) 반영원(潘永源)의 딸로, 사이에 딸 하나를 낳았고, 두번째 부인은 통례문 지후(通禮門祗候) 채흥(蔡興)의 딸로, 사이에 딸 둘을 낳았다. 만년의 생활은 매우 곤궁하여, 사후에 친지들의 부의로 장사지냈다. 40년간 교우관계를 유지했던 이제현은 최해를 자신이 평생 두렵게 여긴 상대였다고 하며 그의 문학적 탁월함을 높이 평가했다.
문집으로 문(文) 43편을 실은 졸고천백(拙藁千百)2권이 있으며 고려 명현들의 시문을 가려뽑은 동인지문(東人之文)(25권)은 일부만이 전하고 있다. 그밖에도 예산농은졸고(猊山農隱拙藁)·귀감(龜鑑) ·예산선집(猊山選集)등이 있다고 하나 전하지 않는다. 동문선(東文選)에 그의 시 34수가 전한다.(다음백과 참조)
雨荷(우하)라는 같은 제목의 시가 있어 올립니다.
雨荷(우하) 비에 젖은 연
受霑本無著(수점본무저) 적셔도 본디 묻은 것 없고
未溢先自傾(미일선자경) 넘치기 전에 기울어 버린다
渠心善持滿(거심선지만) 제 마음의 지만(준비)을 잘해서
植立得圓成(식립득원성) 꼿꼿해도 둥근 것을 이루게 됐다.
-----權近-----
*權近(권근)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 이성계의 새 왕조 창업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개국 후 각종 제도정비에 힘썼다. 하륜 등과 동국사략을 편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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