澹泊明志 寧靜致遠( 담박명지 영정치원)
맑은 마음으로 뜻을 밝히고, 평안과 정숙함 속에서 원대한 이상을 이룬다.
------ 제갈양의 계자서에서-----
계자서(誡子書)
夫君子之行(부군자지행) 무릇 군자의 행함은
靜以修身(정이수신) 고요함으로 몸을 닦고(마음을 고요하게 하여 몸을 닦고)
儉以養德(검이양덕) 검소함으로써 덕을 기르는 것이다.
非澹泊無以明志(비담박무이명지) 담박하지 않으면 뜻을 밝힐 수 없고(밝히지 못하고),
非寧靜無以致遠(비녕정무이치원) 고요하지 않으면 멀리 도달할 수 없다. (마음이 안정되어 있지 않으면 원대한 이상을 이룰 수 없다.)
夫學須靜也(부학수정야) 무릇 배움은 모름지기 (마음이) 고요해야 하고,
才須學也(재수학야) 재능은 모름지기 배워야 한다.
非學無以廣才(비학무이광재) 배움이 아니고는 재능을 넓히지 못하고(넓힐 수 없고),
非靜無以成學(비정무이성학) 마음이 고요하지 않으면 학문을 이룰 수 없다.(太平御覽(태평어람) 제459권에는 非志無以成學(비지무이성학)으로 되어있음 : 뜻이 서지 않으면 학문을 이룰 수 없다.
慆慢則不能硏精(도만즉불능연정) 마음이 방자하고 오만하면 정묘(精妙)한 이치를 깊이 연구할 수 없고,(太平御覽(태평어람) 제459권)에는 淫慢則不能勵精(음만즉불능여정) : 방종하고 태만하면 정신을 바로 잡을 수 없다. 로 되어 있음.
險躁則不能理性(험조즉불능리성) 조급하고 경망하면 본성을 제대로 다스릴 수 없다.
年與時馳(연여시치) 나이는 시간과 함께 내달리고
志與歲去(지여세거) 뜻은 세월과 함께 떠나가니 (太平御覽(태평어람) 제459권)에는 意與日去(의여일거) : 의지는 세월과 함께 사라지다(가버리다).로 되어있음.
遂成枯落(수성고락) : 마침내 쇠잔(衰殘)해
多不接世(다부접세) 세상에서 버려지니(세상과 함께하지 못하니),
悲嘆窮廬(비탄궁려) 궁색한 오두막집에서 슬피 탄식한들
將復何及也(장복하급야) 장차 무슨 수로 되돌릴 수 있겠는가?
註.
誡子書(계자서) : 자식을 훈계(訓戒)하는 글
澹泊(담박) :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함.
慆慢(도만) :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다, 소홀히 하다.
窮廬(궁려) : 궁색한(곤궁한) 오두막집.
위의 글 계자서는 제갈공명이 54세에 죽음을 앞두고 8세인 아들 제갈첨에게 보낸 86자의 편지를 계자서(誡子書)라 부르는데, 소학(小學)에 전문이 실려있다.
제갈 량은 황씨 부인과 17세에 혼인을 했는데 마흔이 넘도록 자식이 없어 부득이 동생 제갈 균(諸葛 均, 189∼?)의 아들 제갈 교((諸葛喬, 204년~228년, 촉한의 장수)를 양자로 들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47세에 늦둥이 아들 제갈 첨(瞻)을 얻었다. 제갈 량은 마지막 5차 북벌 출정인 234년 2월 대군을 이끌고 야곡을 지나면서 형 제갈 근(諸葛 瑾, 174년~241년)에게 편지를 쓰고 난 다음에 8세 난 아들 첨(瞻)의 앞날을 걱정하며 유언과 같은 교훈서인 계자서(誡子書)를 썼다.
역대 중국의 자녀교육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글이다. 제갈공명은 이 편지를 보낸지 6개월 뒤에 오장원에서 병사한다.
제갈량의 아들 제갈첨(諸葛瞻 227~263)은 유비의 아들인 2대황제 유선(劉禪)의 행군호위장군(行軍護衛將軍)으로 중용됐는데 263년 면죽에서 위나라 장군 등애(鄧艾)로 부터 낭야왕(琅耶王)으로 봉하겠다는 것을 거절하고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 족보에 따르면 제갈첨의 손자인 제갈충(諸葛忠)이 신라로 귀순하여 한국 제갈씨들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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