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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이야기

서예를 하면 좋아지는 것(서예의 모든 것)

by 까마귀마을 2023. 9. 3.

서예(書藝)란 문자 중심으로 종이와 붓, 먹 등을 이용하여 미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시각예술을 말한다.
문자가 존재하는 모든 지역에서 발전하였으나, 보통 '서예"라고 말하면 한자문화권에서 볼 수 있는 붓글씨 예술을 가리키는 경우이다, 중국에서는 書法, 일본에서는 書道, 우리나라에서는 書藝라 호칭한다.
한자는 고조선때 전해 졌으나 서예가 본격적으로 전개된 시기는 한사군을 통해 漢대의 문화가 유입 되면서 부터다.
우리나라 서예의 역사는 현재 남아있는 유물로 보아 삼국시대 이전으로 보기는 어렵고 대략 2000년 이상으로 여겨진다.
현전하는 글씨의 유적은 금석(金石)·목판전적(木版典籍)·법첩(法帖)·진적(眞蹟) 등으로 구분되는데, 진적은 본인이 직접 쓴 친필이므로 가장 귀중하다.
중국에는 3,000년 전의 문자인 갑골문(甲骨文)을 비롯하여 춘추전국시대 및 한(漢)·진(晉) 이래의 진적이 많이 출토되었으며, 당·송 이후 종이에 쓴 문자도 남아 있어서 당시의 필법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까지의 진적은 10여 점에 불과하고 조선시대의 것도 임진왜란 이전의 것은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전쟁과 화재로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며, 남아 있는 작품들도 대체로 편지와 같은 소품들이고 큰 글씨는 매우 드물다.
고려 이전까지는 금석문에서 그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기까지만 하여도 상당한 수의 비갈(碑碣)과 금문(金文)이 남아 있고, 고려시대는 비문 외에도 많은 묘지(墓誌)가 남아 있어 풍부한 자료를 전하여 준다. 조선시대는 전적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고, 또 글씨들을 모은 법첩이 다수 전하여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서예라는 독자적인 명칭이 사용된 계기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정부에서 실시하는 미술전람회가 처음 열려 글씨 부문이 다른 미술품과 함께 참여하게 되었을 때 붙여졌다.그 이전에는 일본인들이 부르는 대로 ‘서도(書道)’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서예라 하면 한글 서예와 한자 서예로 분류한다, 한글서예는 보통 궁체, 판본체, 민체로 구분 하는데  궁체(宮體)는 궁중에서 궁녀들이 주로 쓰던 서체로 조선 말기에 발달 하였으며 정서와 흘림의 두서체가 있다 , 판본체(版本體)는 古體라고도 하며  목판에 새긴 서체를 뜻하지만 보통 서예에서 한글 판본체는 훈민정음에 쓰여진 한글서체를 말한다, 민체(民體)는 민가에서 서민들이 자유롭게 쓴 모든 글씨체를 말하며 막 썼다고 막체라고도 한다. 한자서예는 篆書(전서), 隸書(예서), 楷書(해서), 行書(행서), 草書(초서)로 구분하며 이를 흔히 서예 5체라 한다.(한자 서예중에는 조선의 김정희에 의해 창안되고 완성된 김정희의 호를 딴 추사체가 독자적인 한 서체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篆書는 전국시대 각 나라별로 사용된 문자이며 진시황에 의해 통일되었다, 통일되기 이전 문자를 대전, 통일된 이후 문자를 소전이라 하며 현재 서예로 쓰고있는 문자는 소전이다. 隸書는 전서에 예속된 문자라는 설도 있고 옥사를 관리하는 관리에 의해 만들어 졌다는 설도 있다. 예서는 복잡한 전서를 쉽고 간단하게 만든 글자로 漢시대에 완성되어 쓰여졌기에 한 예서라 하며 발견된  비석으로 구분하여 조전비, 사신비, 예기비, 을영비, 장천비, 서협송, 석문송등 여러종류의 서체가 있었던 것으로 알수있다. 그리고 고구려 국내성이 있는 중국 집안에 세워져 있는 광개토대왕비(廣開土大王碑)의 서체도 예서로 본다.  楷書, 行書, 草書는 후한 말기 비슷한 시기에 생겨난 것으로 추정되며 해서는 예서에서 해서로 옮겨지는 북위체를 시작으로 위(魏)나라 종요(鍾繇)라는 사람이 쓴 법첩이 해서로 쓴 초기의 자료이며, 그 후 왕희지(王羲之)에 의하여 해서의 형식이 갖추어진다. 唐의 구양순, 안진경, 우세남, 저수량등에 의해 오늘의 해서체로 완성 되었다. 

행서는 단정한 해서와 막 흘려 쓰는 초서의 중간 정도로 약간 흘려 쓰는 서체를 말한다. 후한(後漢) 때 유덕승(劉德昇)이라는 사람이 창시한 서체라고 한다. 후에 왕희지(王羲之)에 이르러 행서는 서체로서 완성되게 되며 왕휘지와 그의 아들에 의해 꽃을 피웠다.  초서는 전국시대및  漢대에도 속사를 위한 서체가 있어 정체와 구별 되었다 한다. 변천과정에 따라 章草(장초), 今草(금초), 狂草(광초)로 나누어 진다. 오늘날 서예에서 쓰여지는 초서는 왕휘지와 그의 아들 왕헌지 부자에  의해 표준이 된 금초이다.
 
처음 서예를 시작하는 경우, 한글서예는 꽃뜰  이미경의 궁체로 시작하는것이 일반적이다. 한문서예일 경우에는 5체중 어떠한 서체에서부터 시작하는것이 서예를 배우는데 도움이 되는지 고민이 있을수 있다.이 문제에 대해서 서예계에서는 아직까지 이설이 분분하다. 전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이도 있으나 아무래도 해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서예의 기본을 탄탄하게 하고 서예전체를 이해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해서로 서예를 시작하는것은 해서의 기초가 비교적 착실하면 행서로 들어가는 과정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해서의 교본으로는 구양순의 구성궁예천명, 안진경의 안근례례비, 북위체는 장맹룡비등이 있다. 행서는 되도록이면 처음 해서를 배운 사람의 행서를 쓰는 것이 좋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대표적인 행서의 교본은 왕희지(王羲之)의 집자성성교서, 난정서(蘭亭序)  홍복사단비등이 있고  안진경(顔眞卿), 미불(), 황정견(黃庭堅)의 행서도 있다.

행서가 어느정도 숙달된 상태에서 예서(隸書)나 전서(篆書)를 쓰는 것이 일반적 과정이다. 예서는 한나라의 사신비 ,장천비,예기비,을영비, 조전비, 등이 있다. 전서를 배우려면 먼저 소전을 배운뒤에 대전을 배우는 것이 좋다. 그 이유는 소전의 가로획이 가지런하고 세로획은 곧바르고, 둥근 획과 꺾어지는 획들이 손에 어우러지고, 짜임새를 쉽게 익힐수 있고, 붓을 자유스럽게 쓸수있기 때문이다. 초서는 이상의 여러 체를 골고루 습득한 후에 초서(草書)로 들어가는 것이 좋다. 초서 교본으로는 왕희지 초서, 손과정 서보, 왕탁 초서들이 있다.

위와같이 글씨를 배우는 단계가 바로 초학자의 열쇠이며, 좋은 글시를 쓰느냐 못쓰느냐의 관건이 될수 있으니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이 단계를 무시 할경우 성공의 길로 가기에는 때론 어려움이 따를 수도 있고 중도에 포기 할수있는 원인이 될수도 있다.

(곡선으로 된 전서가 붓 놀림이 유연하다고 서예의 시작을 전서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서와 초서는 전문적으로 서예를 하는 분들이 주로 전시하는 작품인 경우가 많고  평소 생활에 잘 사용되지도 않으며 전서나 초서 두 서체는 공부하는 사람들도 적으며 여가나 취미로 하는 대부분의 서예인들은 거의 익히지 않는다, 초서나 전서는 글 자체가 너무 난해하여  습작이나 작품으로 쓴 글씨를 일반인은 말할것도 없고 서예를 하는 사람은 물론 글을 쓴 본인조차도 훗날 글자를 해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서예란 글자에서 의미하듯 문자의 미적 아름다움을 표현 하는 시각 예술이라 하지만 글은 뜻을 전하는 수단이다. 감상하는 사람이 무슨 글자인지 몰라 해석 조차도 할수 없다면 서예가 갖인 기능중 하나인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작품속의  문장의 뜻을 전달하고 이를 음미하는 의미는 없어져 버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서예는 오랜 역사를 지닌 동양의 전통 예술이다실용적 목적과 함께 예술적 목적을 겸하고 있는 서예는 독특한 풍격과 무한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서예를 익힘으로써 심신의 수양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개인이 지닌 예술성을 발현시킬수도 있으며정서적으로 안정을 주기때문에 우울증까지 치료된다는 보고도 있다따라서 오늘날 웰빙시대에도 맞는 복합성격을 지닌 친근한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뇌를 젊게 하는 습관 9가지에 서예가 들어있다, 세밀한 손동작이 필요한 서예를 함으로써 뇌의 노화와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또한 서예를 人書俱老(인서구로)라 했다.
茶에도 찻잎의 나이에 따라 그 맛의 깊이가 달라지듯 글씨 또한 사람과 함께 늙어가며 노련해 진다는 뜻이지만 세월따라 사람과 서예가  같이 무르익는다는 뜻도 될것 같다. 서예에 뜻을 두어거나 서예를 시작한 분들은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조금씩 쉬지않고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어느 날 자신이 원하는 수준에 도달 할수 있을 것이다.
 
 "서예는" 
개인의 인격 수양,
예술적 재능의 개발,
문화교양의 개발,
침착성과 인내심,
의지의 단련 강화(집중력),
심신의 건강(치매예방),
심미안을 높이는데도 도움이 됩니다.
 
서예공부를 시작하려는 사람은 아래의 몇 가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면 만족할만한 결실을 볼수있을 것이다.
첫째, 항상 서예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접촉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테면 서예 전시회를 관람한다든지, 서예 강좌를 수강한다든지, 서예가가 실제로 글씨 쓰는 모습을 관찰한다든지 해야 한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명산대천이나 명승고적을 유람하면서 비석에 새겨진 필적을 감상하고 유명한 서예가가 쓴 간판과 편액을 감상하는 것도 좋다.
 
둘째, 항상 훌륭한 서예가나 기초가 비교적 잘 닦여진 동호인과 기예에 대해 상호 절차탁마하여 서예를 공부하면서 체득한 바를 교환하고, 훌륭한 서예가의 뛰어난 작품을 임서해나가야 한다. 이렇게 임서를 하다보면, 서예에 대한 흥미는 저절로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서예에 대한 흥미의 깊은 정도와 목적의 상이함은 왕왕 서예 공부의 성공과 실패에 영향을 주게 된다. 예컨대 뜻을 세움이 굳건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 초기의 흥미가 적어지면, 중도에서 그만 두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서예 공부의 성패는 흥미를 지속적으로 유지시켜 나가는 데 달려있다
서예공부에 있어 가장 좋은 방법은 서실에서 지도자의 지도를 통해 정확한 붓의 사용법을 직접 배우는 것이지만 그렇지 못할경우에는  휼륭한 서예가의 글씨를 체본으로 임서를 반복해서 꾸준히 하고 동호인들과 서예의 기법을 공유하고 서로 나누는것도 글씨를 익히고 서예의 향상에 좋은 방법이 될수있을 뿐만 아니라 동호인들 과의 지속적인 교류는 친목도모는 물론 경쟁을 통해 흥미를 계속 유발시킬수 있는 계기도 될수있기 때문이다.
작품으로 글씨를 쓴 후 일반적으로 좌측에 낙관 글씨를 쓰고 호및 성명의 인장과 두인을 찍음으로 작품이 완성된다.
낙관(낙성관지의 준말)이 무엇이며 인장의 찍는 위치등 낙관을 쓰는 의미와 호를 짓는 방법을 아래 올립니다.
 
서예가 들이 꼭 알아야 할 낙관(낙성관지의 준말) 에 대한 두 가지
지난 여름에 필자는 서울의 어느 서예전시장에서 전시된 작품을 보면서 두 가지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하나는 그 전시를 관람하던 서예인들이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되면서 생각해 본 문제이다. 서예를 지도하는 스승으로 보이는 노신사가 제자들에게 전시된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그들의 대화 가운데 “낙관(落款)을 잘 새기지 못했다”는 등의 말이 오가면서 ‘낙관’이란 용어를 원래의 뜻과는 다른 ‘인장’이란 의미로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다른 방문객에게 조용히 ‘낙관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더니 역시 손가락으로 전시된 인장(印章)을 가리켰다. 그들은 ‘인장’을 ‘낙관’이라고 말하였고 또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다.
낙관이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낙관은 낙성관지(落成款識)를 줄인말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린 뒤 작자가 직접 그 작품에 년월(年月), 성명(姓名), 시구(詩句), 발어(跋語)를 쓰든가 성명(姓名)이나 아호(雅號)를 쓰고 인장을 찍는 전체를 의미한다.
낙관은 제관(題款)이라고도 하는데 서예작품 전체의 중요한 유기적 구성성분이다. 그것은 전체화면을 안정시키거나 분위기를 돋구기도 하고, 작품의 주제를 부각시키거나 예술적 의경을 조성하여 더욱 풍부한 정취를 갖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서화작품에서 낙관은 전체구도를 고려해서 신중하게 하여야 한다.
낙관은 상관(上款)과 하관(下款)으로 나누거나 장관(長款)과 단관(短款)으로 나누기도 한다. 
상관은 시(詩)의 명칭이나 작품을 받을 사람의 성과 이름을 기록하고, 하관은 글씨를 쓴 사람의 성명, 년월, 글씨를 쓴 장소 등을 기술한다. 특정인에게 작품을 주지 않을 때 일반적으로 상관은 생략하고 하관만 하는데, 이것을 단관(單款)이라고도 한다. 
또한 화면의 구도상 여백이 많아서 전체화면을 채우고 빈자리를 보충하기 위해서 본문과 관계있는 문장을 길게 덧붙이고 성명, 아호 등을 적어 글자수가 많아지게 하는 형식을 장관이라고 하고, 이와 반대로 화면 구도상 아호와 성명을 적고 인장을 찍을 공간만 있어서 글자수가 적어지게 하는 형식을 단관이라고 한다. 고대 시기에는 서화작품에 낙관을 하지 않았다. 송, 원대를 지나면서 조금씩 낙관을 하게되었고, 명, 청대에 접어들면서 거의 제도화되어 작품제작의 필수적인 과정이 되었다.
그리고 서화작품에서 낙관은 작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에 대한 완성의 표시이기도 하고, 후세에 한 작가의 작품이 진적인지 위작인지를 가리는 귀중한 열쇠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작가는 낙관을 할 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항을 주의해야 한다. 
첫째, 본문보다 낙관글씨는 작아야 한다. 왼쪽 모서리에 본문보다 작으면서 조화를 이루도록 처리해야 한다. 
둘째, 하관을 하는 서체는 본문과 어울려야 한다. 예컨대 전서작품은 행서낙관, 예서작품은 해서나 행서낙관, 해서작품은 해서나 행서낙관, 행서작품은 행서나 초서로 낙관할 수 있다. 행서는 서화작품에서 낙관하기에 가장 무난한 서체이다. 
셋째, 낙관에는 작가의 연령이나 신분을 밝히기도 하는데 젊은 사람이 나이를 쓴다든가 ○○거사, ○○도인 등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이다. 
넷째, 윗사람이나 친구 등의 부탁으로 본문을 쓰고 낙관을 할 때는 항렬이나 선후배를 따져서 격에 맞게 해야 한다. 
이와 같이 낙관은 본문을 효과적으로 드러내주기 위하여 구도나 장법상 전체 화면에 어울리게 하여야 한다. 쌍관이든 단관이든 인장의 날인까지 마쳐서 낙관이 마무리 되면 본문과 어울려 서화작품의 격조를 높이는 열할을 할 것이다. 따라서 인장자체를 낙관이라고 하거나 낙관이 삐뚤게 새겨졌다는 말은 고쳐져야 할 것이다. 지도자들은 용어사용에 신중을 기해야 된다고 본다. (한국서예사연구소장, 서예세상 지기)
 
낙성관지(落成款識)의 뜻
낙관(落款) : 작품 본문을 모두 쓰고 난 다음에 좀 작은 글씨로 출처, 때, 곳. 호, 성명 등을 쓰고 도장을 찍는 것을 낙관이라 한다. 낙성관지(落成款識)의 준말로 ‘落成은 일을 모두 마쳤다’이고 ‘款은 도장을 찍다’ ‘識는 기록하다’이다. 낙관을 쓰는 위치는 본문 글자 좌측에, 본문 글자가 10자일 경우 2번째 글자와 3번째 글자 중간에서 시작하여 조화롭게 "錄 杜甫先生之詩 春望 甲辰年 孟春節 烏溪 ㅇㅇㅇ 으로 쓰고 성명인, 아호인" 도장을 찍는게 일반적이다.


두인(頭印), 한장(閑章)  : 작품글 시작하는 첫머리 오른쪽에 글씨보다 높지 않게 찍는다. 읽기 시작하는 부분을 알려주는 예의로서 찍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요즘엔 공모전에 찍지 않고 낸다고도 한다.


성명인(姓名印) : 성명인은 음각(陰刻)으로 새겨서 백문(白文)으로 찍힌다. 낙관글씨의 바로 밑에 도장의 반이나 하나 쯤 띄우고 찍는다.


아호인(雅號印) : 호인은 양각(陽刻)으로 새겨서 주문(朱門)으로 찍힌다. 성명인 아래에 도장크기의 한 개 또는 한 개 반을 띄우고 찍는다. 쓰기는 호(號)를 먼저 쓰고 성명(姓名)을 나중에 썼으나 도장은 그 반대로 성명인 먼저 찍고 호인을 뒤에 찍어 글쓰기의 반대이다.

낙관에는 글씨 즉 서예 작품을 완성한 때, 년월을 표시 하는데 年은 서기를 쓰지 않고 욕십갑자에 의한 해를 쓰고 月은 주로 별칭을 쓴다. 年은 해에따라 고정되어 있지만 月의 별칭은 여러가지가 있어 아래 별도로 올립니다.

 

낙관에 사용되는 月의 별칭(음력)
1월)단월(端月) 맹양(孟陽 ) 맹춘(孟春) 원월(元月) 월정(月正) 인월(寅月)정양(正陽) 정월(正月) 조세(肇歲)

청양(靑陽) 초춘(初春 )추월(陬月) 태월(泰月)태주(太簇).
2월)감춘(감春) 대장월(大壯月) 도월(桃月 )묘월(卯月 )양중(陽中) 여월(如月)여월(麗月 )영월(令月) 정춘(正春)

중양(仲陽) 중춘(仲春 )협종(夾鍾 )혜풍(惠風)화조(華朝) 화조(花朝).
3월)가월(嘉月) 계춘(季春) 고선(姑洗) 곡우(穀雨) 만춘(晩春) 모춘(暮春) 병월(병月)송춘(送春) 잠월(蠶月 )

재양(載陽) 전춘(殿春) 중화(中和) 진월(辰月 )청명(淸明)화월(花月) 희월(喜月).
4월)건월(乾月) 괴하(槐夏 )맥추(麥秋) 맹하(孟夏) 사월(巳月) 소만(小滿) 시하(始夏)신하(新夏) 여월(余月)

유하(維夏 )입하(立夏) 정양(正陽) 중려(仲呂 )초하(初夏).
5월)고월(皐月) 구월(姤月)류월(榴月 )매월(梅月 )매천(梅天) 매하(梅夏) 명조(鳴조)서월(署月) 순월(순月)

오월(午月) 우월(雨月) 유빈(蕤賓 )장지(長至) 정하(正夏)중하(仲夏)포월(蒲月)훈풍(薰風).
6월)계월(季月) 구월(具月) 계하(季夏) 만하(晩夏) 미월(未月) 복월(伏月) 상하(常夏)소서(小暑) 유월(流月)

임종(林鍾) 재양 (災陽) 조월(朝月 )형월(螢月).
7월)과월(瓜月) 냉월(冷月) 동월(桐月) 맹추(孟秋) 상월(相月) 상추(上秋) 선월(蟬月)신월(申月) 신추(新秋 )

양월(凉月) 유추(流秋) 유화(流火) 이칙(夷則) 조월(棗月)처서(處暑 )초추(初秋).
8월) : 가월(佳月) 계월(桂月) 교월(巧月) 남여(南呂) 백로(白露) 소월(素月)유월(酉月) 장월(壯月) 정추(正秋)

중추(仲秋) 한단 (寒旦).
9월) : 계추(季秋) 고추(高秋) 국월(菊月) 만추(晩秋) 모추(暮秋) 무역(無射) 무월(戌月)박월(剝月 )상진(霜辰)

수의(授衣) 영월(詠月) 잔추(殘秋) 현월(玄月).
10월) : 곤월(坤月) 맹동(孟冬) 소양춘(小陽春) 소춘(小春) 양월(良月) 양월(陽月) 응종(應鍾)입동(立冬) 조동(早冬)

초동(初冬) 해월(亥月).
11월) : 고월(辜月) 남지(南至) 복월(復月) 양복(陽復) 자월(子月) 정동(正冬)중동(仲冬) 지월(至月 )창월(暢月)

황종(黃鍾).
12월) : 가평(嘉平) 계동(季冬) 궁동(窮冬) 궁음(窮陰) 납월(臘月) 대려(大呂) 도월(도月)만동(晩冬) 모동(暮冬)

모세(暮歲) 모절(暮節) 빙월(氷月 )사월(斜月) 엄월(嚴月)제월(除月) 축월(丑月).

날자를 나타낼때(음력)
1일 - 삭(朔), 기사백(旣死魄)
15일-망(望), 기생백(旣生魄)
16일-기망(旣望)
8일이전 - 상현(上弦)
23일 이후 - 하현(下弦), 기사패(旣死霸)
1 -10일  : 상순(上旬) 상한(上澣) 상완(上浣)
11-20일 : 중순(中旬) 중한(中澣) 중완(中浣)
21-말일 : 하순(下旬) 하한(下澣) 하완(下浣)

현대 보통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름외  따로 호를 짓거나 가지지 않지만 서예나 묵화, 사군자등의 취미를 갖이거나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호를 지어 이름과 같이 사용한다. 그리고 나름 사회적으로 출세를 하거나 하면 자기의 이름외 따로 호를 갖는 경우도 많이 볼수있다.그럼 호는 어떤 방법으로 짓는지 자세히 알아 보겠습니다.
 
호를 짓는방법
 1)소처이호(所處以號)
처소를 호로 쓰는 것이다. 자신이 지난 날 살았던 곳, 지금 살고 있는 곳, 남다른 인연이 있는 처소, 곧 지명(地名)으로 호를 삼는 방법으로 가장 많이 짓고 있는것 같다. 저의 호는 烏溪(오계)이다. 이는 저가 태어난 고향이름이 烏飛里(오비리)라 여기서 오자를 택하여 지었다.
이를테면① 마을 이름, ② 산(山)이나 골짜기[谷] 이름, ③ 물[水]이름이나 물과 관련이 깊은 지명을 호로 삼는 것이다. 마을 이름으로 호를 지을 때 村(촌), 里(리), 洞(동), 州(주), 郊(교) 같은 한자를 썼다. 산과 골의 이름으로 호를 지을 때에는 山(산=뫼), 峰(봉=봉우리), 巖(암=바위), 岡(망=언덕), 岳(악=큰 산), 谷(곡=골)같은 한자가 써였다. 물과 관련하여 호를 지을 때에는 溪(계=시내), 海(해=바다), 江(강=큰 강), 湖(호=호수), 浦(포=물가), 洲(주=섬), 川(천=내), 潭(담=못) 등의 한자가 동원되었다. 호를 짓는 방법 중에서 비교적 쉬운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때문일까, 옛 어른들이 지은 호 중에서 이 방법으로 지은 호가 가장 많다고 한다. 이황의 퇴계(退溪)나 도산노인(陶山老人)은 안동의 지명을 호로 삼은 것이다. 정도전의 삼봉(三峯)은 단양의 도담삼봉(島潭三峯)에서 딴 것이다. 이이의 율곡(栗谷)과 석담(石潭)은 본가가 있던 파주와 해주의 지명이다. 박지원의 연암(燕巖)은 홍국영을 피해 백동수가 마련해주어 살았던 황해도 금천의 연암협에서 딴 호다. 정약용의 다산(茶山)은 19년간 귀향살이했던 곳, 강진의 다산을 자호한 것이다.


  2)소축이호(所蓄以號)
자신이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물(物)을 호로 삼는 것이다. 특별히 귀하게 여겨 좋아하고 즐기는 것을 호로 삼는다. 梅(매=매화나무), 松(송=소나무), 竹(죽=대나무), 柏(백=잣나무), 蓮(연=연), 瓜(과=오이), 池(지=연못) 같은 한자를 주로 사용했다. 이들 물(物)이 은밀히 감추고 있는 '상징'(simbol)이 작호자의 뜻과 합치되어 호로 삼은 것이니, 소축의 호이면서, 작호자의 뜻 소지(所志)를 그 안에 담은 호라고 할 수 있다. 이규보가 예거(例擧)한 도잠(도연명)의 오류선생(五先生)과 정훈의 칠송처사(七松處士)는 각기 집 주변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와 일곱 그루의 소나무가 있어서 자호한 것이다. 구양수의 육일거사(六一居士)는 일만(一萬) 권의 장서, 일천 (一千)권의 집고록(集古錄 자신의 경전 주석서), 일장(一章)의 거문고, 일국(一局)의 바둑판, 일호(一壺)의 술, 일(一) 늙은이老翁 구양수 자신, 합해 여섯을 가졌다 하여 호로 삼았다.
오상순의 공초(空超)는 빔과 넘음을 말했으니, 작호자의 뜻 소지(所志)이 담긴 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담배 꽁초의 다른 표현 같기도 하다. 김시습의 매월당(梅月堂)도 여기에 속한다. 이들 호에는 선생, 처사, 거사와 같이 사람을 지칭하는 말을 덧붙인 것도 있고, 당(堂)과 같이 집을 덧붙인 것도 있다. 뒤에 당을 붙인 것은 거처하는 집의 이름, 곧 당호를 말하니, 소처로 호를 삼은 것이기도 하다.


  3) 소지이호(所志以號)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호로 쓰는 것이다. 자신이 목표로 삼아 도달한 어떤 경지와 또는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나 목표나 의지 등으로 호를 짓는 방법이다. 옛사람들의 호 중에 이런 뜻을 담아 지은 호가 다수라고 한다. 이런 류의 호는 '수신'(修身)의 뜻으로 삼은 것이 가장 많고, '은둔'(隱遁)이나 '풍류'(風流)를 담은 것도 흔하며, '해학'(諧謔)의 성격을 띄고 있는 것도 간혹 있다고 한다. 뜻이나 가치란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니, 추상의 것이다. 그 추상의 것은 소축이 담고 있는 가치 같은 것이다. 마음에 드는 물(物)과 그것이 상징하는 뜻이나 가치는 각자 다르니 각자 다른 뜻을 담아 호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5만원권의 주인공이자 이이의 어머니 신씨의 호는 사임당(師任堂)이다. 중국 주나라 문왕(文王)의 어머니 태임(太任)을 스승으로 삼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이규보의 백운거사(白雲居士)라는 호는 백운(흰 구름)을 말했으니 소축의 호라고 할 수 있다. 거사를 붙였으니 소처의 호라고 할 수도 있다. 집에서 살며 오직 도(道)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했으니, 소지의 호라고 할 수도 있다. 앞의 둘을 물리치고 맨 뒷 것으로 자신의 호를 삼은 것이다. 


  4)소우이호(所遇以號)
자신의 처지를 호로 짓는 것이다.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여건이나 상황을 호로 삼는 방법이다. 귀인(貴人)이나 부자(富者)됨 또는 건강해짐 등과 같이 긍정의 처지를 나타낼 수도 있지만 드물다. 이보다 늙음, 괴로움, 가난함, 병듦, 외로움, 허무함 등을 나타내는 호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隱(은=숨음), 遁/遯(둔=달아남), 翁(옹=늙은이), 叟(수=늙은이), 老(노=늙음), 夫(부=사내) 등의 글자 또는 居士 處士(거사 처사=벼슬하지 않고 산림에 묻혀 사는 선비), 散人(산인=이곳저곳 흩어져 사는 사람), 山人(산인=산에 사는 사람), 布衣(포의=벼슬없는 사람), 野人(야인=들에 사는 사람) 등의 말들이 사용된다.
 고려 후기 절의를 지킨 세 선비, 이색, 정몽주, 길재를 통칭하여 삼은(三隱)이라 한다. 각각 목은(牧隱), 포은(圃隱), 야은(冶隱)이란 호를 썼다. 이숭인의 도은(陶隱)도 있다. 그리고 출처(出妻)할 만한 정당한 사유없이 정실 아내를 내쫓아 벼슬길이 막혀버린 김숙자(김종직의 부친)의 호가 강호산인(江湖散人)이다.


  5) 소명이호(所名以號)
자신의 이름(名)으로 호를 대신하는 것이다. 자신의 이름 名에 쓰인 한자를 소리(音)는 같지만 뜻이 다른 한자로 바꾸어 호를 삼는 것이다. 동음이의자(同音異意字)를 호로 쓰는 것이다. 또, 이름에 쓰인 한자를 파자(破字)하여 호로 삼는 것을 말한다. 이런 방법으로 호를 지은 사람은 많지 않다. 예를 들어 본다. 이름이 '賢珉(현민)이라면, 玄民(현민=어두운 백성, 유진오의 호이기도 하다)으로 호를 삼는 것이다. 또, 珉(민=옥돌)자를 파자하여 玉民(옥민=옥과 같이 귀한 백성) 또는 民玉(백성은 옥과 같이 귀하다)을 호로 삼을 수 있다. 호의 경우는 아니지만, 비슷한 실례도 있다. 박지원과 같이 북학파의 일원이었던 유득공(柳得恭)의 숙부 유련(柳璉)은 제 이름 璉(현=호련)자를 파자하여 連玉(연옥)을 자(字)로 삼았다. 이런 방식으로 호를 지을 수도 있는 것이다.(옮겨온 글)

 

붓관리
*가끔 검색을 통해 붓 관리에 대해 문의가 있는데 저의 경우는 글씨를 쓰고 난후 음식을 요리하는 비닐장갑 손가락 들어가는 부분에 붓을 넣어  대나무로 만들어진 붓말이에 싸서 냉장실에 보관합니다, 이렇게 하면 글을 쓴후 매번 씻지 않아도 되고 붓이 마르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붓 상태를 보아 수시로 씻고 있습니다.
 
뇌를 젊게 하는 생활습관 9가지
1) 뇌혈류량 감소부터 막아야
뇌가 늙어가는 가는 것은 뇌혈관의 혈액 흐름과 관련이 크다. 혈관벽 내부에 콜레스테롤 등이 쌓여 혈관이 좁아지면 뇌혈류량이 줄어든다. 고혈압·고지혈증·고혈당 등이 뇌혈류 감소를 촉진한다. 이때부터 기억력이 눈에 띄게 떨어진다. 흡연과 과도한 음주가 혈관성 치매의 원인인 것을 직시해 금연, 음주 절제를 실천해야 한다. 이와 함께 뇌혈관 동맥경화을 막기 위해 채소-과일 섭취, 운동 등을 늘려야 한다.
 
2) 시력과 청력, 치아를 보존해야
뇌의 활성도는 시력과 청력, 씹는 능력에 크게 좌우된다. 보고 듣고 음식을 씹으면서 뇌는 크게 자극받는다. 건강할 때 소음을 조심하고 이어폰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청력이 떨어지면 보청기 사용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시야가 흐려지면 백내장 등을 의심해 진료를 서둘러야 한다. 치아 건강에도 노력해야 한다. 모두 뇌의 노화를 늦추기 위한 것이다.
 
3) 세밀한 손동작을 사용하는 취미
그림 그리기, 서예, 자수등 세밀한 손동작을 사용하는 취미 활동을 하면 뇌의 노화를 늦추는데 도움이 된다.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게 중요하다(질병관리청 의학정보).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다른 취미를 가져도 치매 예방에 좋다.
 
4) “일기를 쓰세요”
두뇌를 젊게 하는 활동에는 매일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 쓰기가 효과적이다. 그날 만났던 사람의 이름이나 장소, 분위기를 묘사하면 기억력 유지에 도움이 된다. 노년에는 과거 썼던 일기장을 보며 기억을 더듬으면 두뇌 활동과 함께 마음의 위안도 얻을 수 있다.
 
5) 싸고 맛있는 음식점 탐방, 어때요?
호기심을 느끼지 못하면 뇌 활동이 정체될 수밖에 없다. 늘 가던 음식점만 갈 게 아니라 범위를 넓혀 싸고 맛있는 음식점을 찾는 것도 훌륭한 두뇌활동이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하고 걸어서 가면 뇌를 자극한다. 건강식이면 더욱 좋다. 채소와 생선, 적절한 육류를 곁들이면 뇌혈관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6) 즐겁게 외국어 공부
뇌세포를 늘리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외국어 공부다. 그러나 어학 공부가 스트레스로 작용하면 곤란하다. 방송에선 각종 어학 강좌가 넘쳐난다. 자신에 맞는 강좌를 선택해 즐겁게 외국어를 학습하다 보면 뇌가 젊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코로나19가 끝나면 해외여행에서 외국어를 사용하겠다는 목표의식을 갖는 것도 좋다. 카드놀이, 낱말 맞추기 등 머리를 쓰는 여가활동도 도움이 된다.
 
7) 스트레스 관리
과도한 스트레스는 뇌 건강에도 적이다.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면 혈관이 수축해 뇌혈관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심하면 우울증으로 이어져 치매 위험이 높아진다. 일상에서 스트레스가 없을 수가 없다.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 앞서 언급한 취미생활을 하거나 음악감상, 명상, 운동 등으로 스트레스를 낮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8) “친구를 자주 만나세요”
친구와 교류하면 장수에 도움이 되고 뇌를 자극한다. 사회 활동까지 하면 더욱 좋다. 직장에서 퇴직하면 ‘사회 친구’가 급속히 줄어들고 진정한 친구만 남는다고 한다. 이들과 만날 때 술자리를 줄이고 가벼운 등산, 취미 활동을 같이하면 서로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
 
9) 무리한 운동은 독
뇌졸중(뇌경색, 뇌출혈)은 뇌 건강의 최대 적이다. 뇌의 혈관이 손상되어 치매 위험이 높아진다. 평소 혈압이 높은 사람은 대변을 보기 위해 힘을 쓰다가도 뇌졸중으로 쓰러질 수 있다. 무거운 기구를 드는 운동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운동보다 휴식이 낫다. 무리한 운동을 하다 쓰러지면 뇌에도 치명타가 돼 바라던 건강수명을 위협한다.(코메디 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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