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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취미 생활/한문서예

途中(도중)

by 까마귀마을 2022. 10. 4.

 

途中(도중 ) 길을 걷다가

 

日入投孤店(일입투고점)  해가 저물어 외딴 주막에 들었노라

山深不掩扉(산심불엄비)  산이 깊어서인가 사립문도 아니닫네

雞鳴問前路(계명문전로)  새벽닭 울제 갈 길을 묻는순간

黃葉向人飛(황엽향인비)  노란 낙엽이 날 향해 날아오네.

 

                            권필(權韠, 1569~1612)

 

日入(일입): 해가 들다. 날이 저물다.

投(투): 투숙하다.

孤店(고점): 외딴 주막집.

山深(산심): 산이 깊다.

不掩(불엄): (문을) 닫지 않다.

扉(비): 사립문. //

鷄鳴(계명): 닭이 (새벽을 알려) 울다.

前路전로): 앞 도로.

黃葉(황엽): 가랑잎.

向人飛(향인비): 사람 쪽으로 날라 오다.

 

늦은 가을 길을 가던 나그네가 해가 저물자  지친몸을 쉬려고 깊은 산속 외딴 주막에 투숙하니 산이 깊어 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인지 사립문도 닫지 않은채 열려있다. 괴나리봇짐을 풀고 눈을 붙이는 둥 마는 둥 밤을 새우고 첫닭이 울자 나그네는 일어나  앞길을 묻는데 단풍에 물던 누런 잎들이 나그네를 향해 후두득  날아든다. 산속 허름한 주막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나그네의 고달픔, 외로운 처지가 낙엽지는 늦가을의 풍경으로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권필(權韠, 1569~1612)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여장(汝章), 호는 석주(石洲). 승지 권기(權祺)의 손자이며, 권벽(權擘)의 다섯째아들이다.

 

허균 ,정철(鄭澈)의 문인으로, 19세에 장원급제 하였으나 한 글자를 잘못 썻다하여 위소된후 벼슬을 마다하고 자유분방하며 유랑생활을 하며 야인으로 일생을 마쳤다. 젊었을 때에 강계에서 귀양살이하던 정철을 이안눌(李安訥)과 함께 찾아가기도 했다. 동료 문인들의 추천으로 제술관(製述官)이 되고, 또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임명되었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았으며, 강화에서 많은 유생을 가르쳤다.

 

임진왜란 때에는 구용(具容)과 함께 강경한 주전론을 주장했다. 외척인 유희분(柳希奮) 등의 방종을 임숙영(任叔英)이 「책문(策文)」에서 공격하다가 광해군에 밉게 보여 삭과(削科)된 사실을 듣고 분함을 참지 못하여 「궁류시(宮柳詩)」를 지어서 풍자, 비방하였다.

이에 광해군이 대노하여 시의 출처를 찾던 중, 1612년 김직재(金直哉)의 무옥(誣獄)에 연루된 조수륜(趙守倫)의 집을 수색하다가 연좌되었음이 밝혀지자  이덕형, 이항복의 간청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혹독한 곤장을 맞고 들것에 실려 도성문(동대문)을 나오는 도중에 행인들이 주는 술 한잔 마시고 장독(杖毒)이 치받쳐서 죽었다.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시가 바로 궁류시(宮柳詩)다.

조선 오백 년 역사에 있어서 詩때문에 죽은 사람은 몇이나 될까?

살아서는 강화도에 살았고 죽어서는 고양시에 묻혔다

권필은 “捨則石 用則器(사칙석 용칙기)”란 말로 유명하다. ‘버려두면 돌이요, 사용하면 그릇’이라는 뜻으로 재주는 많으나 중용되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 말이다.

권필 선생의 삶은 44살의 짧은 삶을 살면서도 호방하면서도 구속받지 않는 野人의 삶을 살다 갔다

시재가 뛰어나 자기성찰을 통한 울분과 갈등을 토로하고, 잘못된 사회상을 비판 풍자하는 데 주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인조반정 이후 사헌부지평에 추증 되었고, 광주(光州)운암사(雲巖祠)에 배향되었다. 묘는 경기도 고양시 위양리에 있고, 묘갈( 머리 부분을 둥그스름하게 다듬어 무덤앞에 세우는 작은비석)은 송시열(宋時烈)이 찬하였다. 『석주집(石洲集)』과 한문소설 「주생전(周生傳)」이 현전한다.

 

*권필을 죽게한 詩  궁류시(宮柳詩)

궁류청청앵란비(宮柳靑靑鶯亂飛)
만성관개미춘휘(滿城冠蓋媚春輝)
조가공하승평락(朝家共賀昇平樂)
수견위언출포의(誰遣危言出布衣)

궁궐 뜨락 버들은 푸르르고,꽃잎은 어지러이 흩날리는데,
온 성안의 벼슬아치들은 봄빛을 받아 아양 떠는구나
조정에서는 태평하고 즐겁다고 서로를 치하하는데 
그 누가 위태로운 말을 한갓 선비에게서 나오게 하였던가?

* 버들은 푸르르고 : 유씨의 세력이 한창이고 ( 당시 조정의 폐단을 적나라하게 꼬집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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