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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취미 생활/한문서예

적벽회고 (염노교)

by 까마귀마을 2020. 10. 22.

소동파의 시 적벽회고 (해서체)

 

大江東去浪淘盡 (대강동거랑도진) 양자강 물은 동으로 물결따라 사라져갔네

千古風流人物 (천고풍류인물) 아득한 옛날을 풍미하던 인물들과 함께

故壘西邊人道是 (고루서변인도시) 옛성 서쪽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지

三國周郞赤壁 (삼국주랑적벽) 삼국시대 주유(周瑜)의 적벽대전 터라고

亂石穿空 (란석천공) 험난한 바위 절벽 하늘을 뚫을 듯 솟아있고

驚濤拍岸 (경도박안) 기슭을 부숴 버릴 듯한 파도

捲起千堆雪 (권기천퇴설) 천 겹의 물보라로 휘감아 올린다

江山如畵 (강산여화) 강산은 그림 같은데

一時多少豪傑 (일시다소호걸) 그 시절 호걸은 몇몇이었던가!

遙想公瑾當年 (요상공근당년) 아득히 당시의 주유(周瑜)를 떠올리니

小喬初嫁了 (소교초가료) 소교가 처음 시집왔을 때

雄姿英發 (웅자영발) 영웅의 풍채 당당했었네

羽扇綸巾談笑間 (우선윤건담소간) 하얀 깃털 부채에 윤건 쓴 제갈량과 담소하는 사이

檣櫓灰飛煙滅 (강로회비연멸) 강력한 조조 군대의 돛대 노는 재되어 날고 연기처럼 사라졌네

故國神游 (고국신유) 적벽을 거닐며 옛일을 회상하노라니

多情應笑我 (다정응소아) 정이 많은 내가 참으로 우습구나

早生華髮 (조생화발) 이렇게 일찍 머리 세어버린 내 모습

人生如夢 (인생여몽) 인생은 꿈과 같은 것

一尊還酹江月(일준환뢰강월) 한잔 술을 들어 강물 속의 달님에게 부어 주노라

 

 

적벽회고(赤壁懷古)는 삼국지의 최대 격전지인 적벽의 옛 일을 생각한다는 뜻인데 첫 구절이 대강동거(大江東去)로 시작하여 대강동거사(大江東去詞)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100 글자로 되어있는 특이한 시가체(詩歌體)인 백자요(百字謠)이며, 염노교(念奴嬌)라고도 한다.

염노교는 사(詞)의 유명한 형식 가운데 하나인데, 당나라 현종(玄宗)때의 유명한 가기(歌妓)인 염노의 아름다움을 상기시킨다고 하여 이 시가체를 아름다울 교(嬌)를 붙여 염노교(念奴嬌)라고 부른다. 

적벽회고는 백자요이고, 백자요는 염노교이기 때문에, 염노교가 적벽회고의 부제목이 된 것이다.

기녀였던 염노가 죽고 난 이후, 염노교라는 사패(詞牌 : 악곡, 곡조에다가 가사를 붙인것)또는 곡패(曲牌)가 당나라 궁중에 생겨났는데, 그 글의 내용은 100자로 이루어지며 앞 조각과 뒷 조각의 글자 수가 각각 49자와 51자로 이루어진다. 이 형식은 음조(音調)가 높고 낭랑하여 호방하고 진취적인 기상을 표현하는데 적합하였다.

이 사()는 동파전집(東坡全集)에 실려 있으며 송() 신종(神宗) 원풍(元豐) 5(1082) 소식(蘇軾) 47세 때 왕안석의 신법을 반대하다 황주로 유배되었을 때 지은 시이다. 염노교는 사패명으로 쌍절 100자로 구성되며 염노교를 제목으로 한 사는 소식 외에도 신기질(辛棄疾), 이청조(李淸照), 주숙진(朱淑眞)이 쓴 사들이 있다. 이 사의 부제(副題)는 적벽회고(赤壁懷古)이며, 소식이 장강의 적벽을 바라보며 적벽대전에서의 주유의 공적을 찬양하고 자신의 현실에 대한 탄식을 한 사이다. 소식은 이 당시 전적벽부(前赤壁賦)와 염노교·적벽회고(念奴嬌·赤壁懷古)를 지었으며 그 해 10월 후적벽부(後赤壁賦)를 지었다

사(詞)란 시(詩)가 음악과 완전히 분리된 뒤에 노래 가사로 생겨난 한문 문체이다.

한대(漢代)의 악부와 같은 노래 가사였다는 점에서 악부(樂府)라고도 불렀고, 새로운 악곡가사라는 뜻에서 신성(新聲)·여음(餘音)·별조(別調) 등으로도 불렀다. 그리고 구형이 자유롭다는 점에서 장단구(長短句)라고도 불리었고, 시의 변형이라는 점에서 시여(詩餘)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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