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유대인들은 사후세계에 대한 확실한 개념은 없었다. 그들의 경전인 히브리 성경(구약)의 세올(한글성경 : 음부로 번역)은 모든 죽은 자들이 가는 지하의 어둠의 장소였다.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 모두가 생전의 도덕적 선택이나 결과에 관계없이 누구나 가는 곳이었다. 그곳은 침묵의 장소였으며. 하늘에서 가장 먼 곳에 있었다. 쉽게 말하면 우리의 저승 같은 개념 이었다. 구약에서 죽음에 대한 주제는 일관성 없이 다루어지지만 잔다, 열조에게 돌아갔다등의 표현으로 볼때 육체적 죽음이 삶의 종말임을 뜻하고 있다. 즉 아브라함, 모세, 미르얌, 다윗,그리고 열왕기등에 기록된 대부분의 인물들의 죽음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죽은 후에 무슨 일이 일어 나는지에 대해 상충되는 다양한 견해가 생기기 시작하지만 대부분의 유대 사상가들은 사후세계 보다는 지상 생활, 즉 현세의 삶에 초점을 두었지 내세에는 관심이 없었고 개념도 없었다.
제2성전 시대(대략 기원전 500년 – 기원후 70년)에는 세올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이 발전했다. 일부 텍스트에서 세올은 의로운 자와 악한 자 모두의 집으로 각각의 구획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다른 텍스트에서는 죽은 악한 자만을 위한 벌의 장소로 여겨졌다. 히브리(구약) 성경이 기원전 200년경 알렉산드리아에서 70인역으로 그리스어(헬라)로 번역되었을 때, 하데스(그리스어로 지하 세계)라는 단어가 세올을 대체했다. 이는 신약 성경에서의 하데스가 죽은 자들의 지하 세계이자, 그것이 나타내는 악의 의인화로 반영되어 있다.
탈무드는 내세와 관련된 여러 가지 생각을 제시한다. 죽음 이후 영혼은 심판을 받기 위해 소환된다. 흠 없는 삶을 산 사람들은 즉시 ''Olam Haba'' (올람 하바 : 오는 세상)또는 내세에 들어가지만, 대부분은 현세에서의 행위에 대한 성찰의 기간을 거친다. 어떤 이들은 이 기간을 영혼의 "재교육"으로, 다른 이들은 영적인 불편함으로 본다. 이 기간은 1년을 넘지 않으며, 이 기간이 끝나면 영혼은 내세로 들어간다. 불편함은 유대교 내세의 특정 개념의 일부를 이루지만, 영원한 고통이 가해지는 오늘날 기독교인이 이해하는 지옥의 개념은 유대교 내세관도 교리도 아니다.
윤회적 영혼불멸 사상 즉 내세관이 어떻게 기독교로 유입 되었을까?
몸은 죽어도 영혼은 불멸한다는 영혼불멸 사상의 근원은 어디이며, 이교도 사상인 헬라 철학, 이집트의 영혼 불멸론이 오늘날까지 기독교의 교리로 이어져 내려온 역사적 배경은 무엇일까? 기원전 6세기 유명한 수학자이며 철학자인 피타고라스는 영혼불멸 사상에 기초하여 윤회 사상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했다. 이렇게 “철학”이라는 옷을 입은 영혼불멸 사상은 기원전 5세기 소크라테스는 그것을 자신의 신앙으로 만들었다. 여러차례 이집트를 방문하며 영혼불멸 사상을 더욱 깊이 확신하게 되었고, 그는 죽음을 영혼과 육신의 분리로 보았다. 그는 죽음을 통하여 영혼이 해방되어 감옥과 같은 육신에서 벗어나서 불멸의 존재가 되어, 영원한 “이데아”(idea)의 세계로 돌아간다고 가르쳤다. 그는 자신의 믿음을 실증하기 위해서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태연하게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몸은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며 죽음을 선택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그의 수제자 플라톤은 마침내 영혼불멸 사상의 열렬한 주창자가 되었으며, 그의 논집인 "파에돈"(Paedon)은 영혼불멸 사상의 교과서로 자리 잡게 되어서 중세기까지 서방 정신 문화의 기초를 이루게 되었다. 영혼불멸 사상은 고대 헬라의 신비주의에 기초를 둔 이교 사상이라는 사실을 유대 대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영혼불멸의 신앙은 헬라 사상, 특별히 바빌로니아와 이집트 사상을 이상하게 혼합한 신비 종교를 받아들인 플라톤의 철학과 접촉함으로써 유대인들에게 유입되었다.”
플라톤의 철학은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의 여러 측면에서 기독교 사상과 쉽게 융합될 수 있는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플라톤은 영혼불멸 사상을 체계화시켜 하나의 이론으로 정립했다.
이데아론: 플라톤은 물질 세계를 불완전하고 변화하는 세계로 보았고, 이와 대비되는 이데아의 세계를 완전하고 변하지 않는 실재로 이해하였다. 이데아의 세계는 물질 세계의 모든 사물과 개념의 완전한 원형이 존재하는 세계로, 이는 기독교에서 천국 또는 하나님의 초월적 세계와 유사한 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영혼의 불멸 :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이 물질적 육체와는 별개로 존재하며, 죽음 이후에도 불멸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기독교 신학에서 영혼의 구원과 영생 개념과 결부된다.
이성적 영혼: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이 세 가지로 구성된다고 보았는데, 그 중 이성적 영혼은 인간이 진리를 인식하고 도덕적 삶을 살아가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며 이 이성적 영혼 개념은 기독교적 플라톤주의에서 인간이 하나님을 인식하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으로 해석되었다.
플라톤의 영혼불멸 사상은 3세기경에 기독교회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기독교가 로마 제국에서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초기 교부들은 플라톤 철학의 사상을 기독교 신학에 연결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영혼 불멸의 개념은 하나님, 천국, 구원의 개념과 쉽게 통합될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은 교부들이 플라톤 철학을 기독교 신학의 틀 안에서 해석하려 했다. 특히 로마제국의 헬라 문화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에는 당대에 있어서 최대 규모의 신학교가 있었는데, 3세기 초에 신학교의 교장을 지낸 오리겐은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아서 영혼불멸 사상을 기독교회로 끌어들였다. 그는 “하나님이 영원하고 불멸인 것처럼, 인간의 영혼도 불멸이다”라고 선언하고 자신은 “영혼불멸을 믿는 진정한 플라톤주의자”라고 말했다. 오리겐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북아프리카 칼다고 출신의 라틴 교부 터툴리안도 플라톤의 영혼불멸설을 지옥으로까지 적용시켰다. 그는 의인의 영혼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처럼 악인의 영혼도 지옥불에서 영원히 탄다는 영원지옥설을 기독교회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결과, 죄의 결과인 “사망”을 “영원한 불행과 고통”으로 바꾸어 놓았다. 터툴리안, 오리겐, 어거스틴 등과 같은 영혼불멸의 신봉자들이 모두 헬라의 영혼불멸 사상의 본거지인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한 북아프리카 지역의 교부들이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5세기에는 영혼불멸설을 근거로 연옥설이 문을 연다
터툴리안과 같은 라틴 교부이며, 북아프리카의 히포 출신인 당대 최고의 신학자인 어거스틴은 중세 가톨릭교회의 신학적 기초를 세웠다. 그는 33세 때 그리스도교회로 개종했는데, 그전까지 영혼불멸을 믿는 마니교의 신자였으며 플라톤주의를 열렬히 신봉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회로 개종한 이후에도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플라톤의 영혼불멸 사상을 성경의 가르침으로 만들기 위해서 무리하게 성경을 해석했다. 어거스틴은 각 개인 영혼의 운명은 죽는 즉시 결정되며 내세에는 정결케 하는 고통이 있다고 가르침으로써, 연옥의 개념을 가톨릭교회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연옥설이란, 천국에 가지 못하고 연옥에 떨어진 사람이 그곳에서 일정 기간 동안 죄를 정결케 하고 영혼을 정화시키는 고통을 받으면, 천국에 갈 수 있는 구원에 대한 두 번째 기회가 생기게 된다는 교리이다. 어거스틴의 이러한 연옥의 개념은 플라톤의 “그치지 않는 고통의 처소 개념”에서 받아온 것으로 어거스틴에 의해서 기초가 놓여진 연옥설은 서기 582년에 교황 그레고리에 의해서 교리로 인정되었다.
플라톤의 영혼불멸주의를 신봉하고 가르쳤던 초기 기독교 교부들
*필론(BC 20~AD 47) -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 철학자로서, 몸과 영혼을 분리시킨 플라톤의 헬라 사상을 신플라톤주의 형태로 유대교에 끌어들이는데 앞장섰다.
*오리게네스(약 185~254) - 알렉산드리아 신학교에서 교장을 지낸 3세기 초의 천재적인 교사. 하나님이 영원하고 불멸인 것처럼 인간의 영혼도 불멸이라고 주장했으며, 자신은 영혼불멸을 믿는 진정한 신플라톤주의자 라고 자처했다.
*테르툴리아누스(약 160~240) - 플라톤과 같은 영혼불멸을 주장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악인의 영혼은 지옥불에서 영원히 탄다고 하는 "영원지옥"을 최초로 주장한 장본인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보면, 악인들은 지옥에서 영원히 불탄다는 이론도 처음부터 성경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서기 2-3세기경에 와서 한 개인이 추측하여 만들어 낸 이론에 불과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 아우구스티누스(354~430) - 북아프리카 히포 출신으로 당대의 최대 신학 교부였다. 그의 가르침은 중세 가톨릭 교리의 기초가 되었다. 그는 플라톤의 영혼불멸 사상과 테르툴리아누스의 영원지옥설을 확증하는 한편, 플라톤의 철학 개념을 빌려 연옥설을 만들어 냈다.
*보에티우스(Boethius, 480-524) 역시 플라톤과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을 기독교적으로 계승한 사상가이다. 그는 특히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의 초월성과 인간의 영혼 불멸을 강조했다. 보에티우스의 저서 "철학의 위안(The Consolation of Philosophy)"은 기독교적 플라톤주의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인간의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철학적 진리의 힘을 강조한다.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 -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확인된 영혼불멸 사상과 영원지옥 그리고 연옥의 신앙은 13세기 스콜라 철학자요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중세 가톨릭교의 확고한 교리로 집대성 되었다. 이러한 사상이 담긴 저서가 바로 그 유명한 "신학대전"이다.
영혼불멸 사상과 그것에 기초해서 생긴 연옥설은 13세기의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서 확고한 신학으로 집대성 되었으며, 그로부터 50년 후에는 단테의 신곡이라는 소설에 의하여 영혼불멸 사상에 입각한 지옥, 연옥, 천국이 대중 속으로 깊이 들어가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성경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교의 영혼불멸설이 기독교교회 안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16세기 종교개혁 운동의 불길이 일어나기 직전에 열린 제5차 라테란 종교회의에서 교황 레오 10세는 다음과 같은 역사적인 교서를 반포했다.
“어떤 사람들이 영혼의 속성은 죽을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우리는 거룩한 회의에서 결정된 대로, 영혼은 불멸이라고 한 교황 클레멘트 5세의 교시에 따라 영혼은 죽게 된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정죄하고 배척하며 그와 같은 그릇된 주장에 집착하는 모든 사람들을 멀리할 것과 이단으로 징벌하여야 할 것임을 명하는 바이다.”
이때부터 영혼불멸을 반대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공식적으로 이단이 되었으며 가혹한 처벌의 대상이 되었다.
종교개혁 이후 칼빈을 통해서 개신교회로 들어 온 영혼불멸설
젊은 가톨릭 신자였던 요한 칼빈은 개신교회로 개종한 지 2년째가 되던 해인 1534년(25세)에 영혼불멸을 반대하고 죽음을 잠과 같은 무의식으로 가르친 그리스도인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최초의 신학논문인 “혼수론”을 저술했다. “혼수론”은 오늘날 개신교회가 영혼불멸 신앙을 따르도록 만드는 불행한 계기가 되었다. “혼수론”은 칼빈이 개신교회로 개종한 지 불과 2년만에 나온 논문이고, 그것을 저술한 때의 그의 나이가 25세라는 어린 나이였음을 생각할 때, 그가 저지른 신학적 과오를 이해할 수 있지만, 그가 남긴 결과와 영향은 참으로 상처가 크고 깊다.
종교개혁 운동을 주도했던 영국 옥스포드대학의 교수인 위클립과 틴데일 그리고 독일의 마틴 루터는 중세 천주교회의 영혼불멸설 교리가 이교적인 사상임을 공공연하게 지적했지만, 칼빈이 선배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을 배척하고 “혼수론”을 통해서 이교적이고 비성서적인 입장을 취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역사이다. 그렇다면, 칼빈이 받아들인 영혼불멸 신앙은 도대체 어디에 기초를 둔 것일까? 칼빈은 자신의 유명한 저서인 “그리스도교 강요”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있다.
“이교도 철학자들로부터 영혼의 정의를 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예외가 있는데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인 플라톤은 ‘영혼은 불멸의 본질’이라고 바르게 정의하였다.”
칼빈이 저술한 그리스도교 강요 제1권 15장 6항의 '영혼과 그 기능' 이라는 항목에는 자신의 가르침이 플라톤의 사상에 근거했음을 밝히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칼빈과 플라톤은 영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매우 유사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신(spirit) 혹은 영혼(soul)은 몸과 구분되는 본질이다. … 몸이 죽은 후 영혼은 감각과 지성을 갖춘 채 살아있다. 여기에서 나는 영혼의 불멸 이외에 어떤 다른 사상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단언하는 바이다
“죽음의 온 밤을 통하여 영혼은 행복을 누리기에 필요한 모든 의식과 감각을 가지고 깨어 있다.”
“죽음이란 몸이 영혼으로부터 분리되어 존재하고, 영혼이 몸에서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우리가 몸에 의해서 방해를 받고 있는 한, 그리고 우리의 영혼이 그토록 큰 악에 의해서 더럽혀져 있는 한, 우리는 결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충분히 얻을 수 없다. … 만약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한 분명한 지식에 도달해 보고자 한다면, 우리는 몸에서 분리되어야 한다.” : 영혼에 관한 플라톤의 사상.
어떤 학자들은 칼빈의 “혼수론”에 대해서 “기록은 칼빈의 손으로 했지만, 목소리는 플라톤의 목소리이다”라고 개탄했는데, 그 이유는 뿌리가 같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은, 종교개혁자들은 영혼불멸과 연옥 신앙을 강력하게 부인하면서 중세기 가톨릭교회의 오류를 지적하고 개혁하려고 했지만, 플라톤 사상을 이어받은 가톨릭교회 신학자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칼빈을 통해서 영혼불멸설이 오늘날 개신교회의 전반에 걸쳐서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만약 칼빈만 종교개혁자들과 협력하였더라면, 영혼불멸 사상, 연옥 사상, 영혼이 죽은 순간에 천국에 가거나 지옥에 간다는 사상은 종교개혁 운동에 밀려서 개신교회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을 것이다.(일부 옮겨온 글)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겔18:4)
'교회 이야기(나는 왜 가나안 성도인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여자는 잠잠하라 (1) | 2026.01.08 |
|---|---|
| 초대교회의 정통과 이단? (2) | 2026.01.03 |
| 믿음의 지평을 넓혀가는 15가지 신앙고백 (2) | 2025.12.16 |
| 사라진 윤회론(사상) (2) | 2025.12.10 |
| 계엄이 왜 내란인지 모르는 기독교인 (1) | 2025.11.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