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 민주당 대표는 지난 22일 오전 최고위 회의에서 민생 중심 실사구시를 표방하면서 이른바 '흑묘백묘론'을 이야기했다.
흑백백묘론이란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는 중국에서 나온 말이다.
이 대표가 이날 '흑묘백묘론'까지 언급하며 '회복과 성장'을 언급한 것은 본인의 강점인 '실용주의' 즉 '실사구시' 마인드를 강조한 것이며 이제는 이념, 진영으로 싸우지 말고 민생에 전념하여 국민이 편안하고 잘 살게 하여야 한다는 의미 일거다.
흑묘백묘론은 제5대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었던 덩샤오핑이 제창한 실용주의적 개혁개방정책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유명한 어록이다. 오늘날 중국의 발전을 가속시킨 도화선과도 같은 발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이 발언은 쓰촨성 격언인 황묘흑묘론을 저우언라이가 인용한 말을 덩샤오핑이 재인용한 것이다. 이는 즉 공산주의냐 자본주의냐에 관계없이 인민들이 당면한 문제인 생활수준 향상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면 그것이 제일이라는 의미의 말이었다. 아울러 중국의 정치이념인 사회주의는 고수하되 경제정책은 개방정책을 도입함으로서 중국의 경제 발전을 도모했으며 동시기 유고슬라비아와 헝가리의 사례들을 상당히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이재명 대표의 흑묘백묘론이 있자 여당인 국민의 힘에서는 민생에 아무 관심 없으면서 과거 중국 공산당이 내놓았던 흑묘백묘론까지 끄집어 냈었다며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길 수는 없다고 주장하며 많은 국민들께서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되기라도 하면 나라가 전체가 공산 전체주의 국가가 되는 게 아니냐'고 걱정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흑묘백묘론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만 끄집어 낸 말이 아니다. 흑묘백묘론은 유명한 어록이라서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도 그동안 여러사람이 언급한 말이다.
대표적으로 국민의힘의 홍준표 대구시장이 있다. 2023년에 여당 비대위원장 논란이 일자 "지금 적절한 말은 바로 흑묘백묘론"이라며 직접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럼 흑묘백묘론의 근원이 되는 실사구시에 대하여 알아볼까 한다.
實事求是(실사구시)의 뜻은 사실에 근거하여 진리를 추구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현실에 바탕을 두고 사물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진리를 발견하거나 결론을 도출하는 태도를 강조 하는 의미이다.
實事求是의 유래
이 고사성어는 중국의 고대 역사서 한서(漢書) 하간헌왕전(河間獻王傳)에 기록 되어 있다. 이 이야기는 한(漢)나라의 하간왕(河間王) 유덕(劉德)의 학문적 태도와 연구 방식에서 비롯되었다.
하간왕 유덕은 한나라 경제(景帝)의 아들로, 하간(河間) 지역에 봉해져 하간왕이 되었다. 그는 학문을 즐기고 고서를 수집하며 연구하는 데 몰두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진시황이 분서갱유(焚書坑儒)를 통해 수많은 고 서적을 불태운 이후, 고대 서적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유덕은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고서를 수집하며, 진(秦)나라 이전의 귀중한 지식과 문헌을 복원하는 데 힘썼다. 유덕은 단순히 서적을 수집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학자들과 함께 고서를 연구하고 사실을 확인하며 학문적 진리를 탐구했으며 이 과정에서 그는 항상 사실에 근거한 결론을 도출하는 태도를 유지 하였다 한다.
당시 사람들은 유덕의 학문적 태도를 칭송하며 이렇게 말했다:
修學好古, 實事求是 (수학호고 실사구시 : 학문을 닦고 옛 것을 좋아하며, 항상 사실로부터 진리를 구한다). 이 표현에서 實事求是라는 고사성어가 유래 하였다 한다.
實事求是는 사실에 입각하여 진리를 탐구하려는 태도를 일컫는 말이다. 이후 청(淸)나라 초기에 고증학(考證學)을 표방하는 학자들이 공리공론(空理空論)만을 일삼는 송명이학(宋明理學)을 배격하여 내세운 표어로 실질적인 일에 나아가 옮음을 구한다는 말이다.
즉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 보는 것과 같은 실험과 연구를 거쳐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을 통하여 정확한 판단과 해답을 얻고자 하는 것이 실사구시(實事求是)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후기 김정희의 '실사구시론'이 유명하다.
그 개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만약 실사(實事)를 일삼지 않고 공소(空疎)한 학술만을 편하다고 여기고, 그 옳음은 구하지 아니하고 선인(先人)의 말만을 위주로 하면 그것은 성현의 도에 배치된다. 한유(漢儒: 한의 유학자)들은 경전을 훈고함에 실사구시하지 않음이 없었으나, 진(晉) 이후로 노장(老莊)과 불교가 극성함에 학술이 일변해 실사구시와는 상반되었다.
송대의 유학자들은 성리(性理) 등의 일에서 도학(道學)을 천명해 옛사람이 발하지 못한 바를 발하기도 하였으나 오직 육왕학파(陸王學派) 등이 공허함을 답습해 유학을 불교에 끌어들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불교를 유학에 끌어들이기도 하였다. 학문의 도는 이미 요(堯), 순(舜), 우(禹), 탕(湯), 문(文), 무(武), 주공(周公)을 귀착점으로 삼은즉 마땅히 실사구시해야 하며 공허한 이론을 따르는 것은 옳지 않다.학자는 한유(漢儒)들이 정밀하게 훈고하는 것을 높이 본받아야만 한다.
성현의 도는 비유컨대 큰 저택과 같아서 주인은 항상 당실(堂室)에 거처하고, 당실은 문지방을 통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 훈고하는 일은 마치 문지방과 같다. 그러므로 학문을 함에 반드시 정밀한 훈고를 구하는 것은 당실에 잘못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훈고로만 끝내야 할 일도 아니다. 한유들이 당실을 깊이 논하지 않는 것은 문지방이 잘못되지 않으면 당실도 스스로 잘못되지 않기 때문이다.
진송(晉宋) 이후 학자들은 고원(高遠)한 것만을 힘쓰고 공자를 높이면서 성현의 도는 이와 같이 천근(淺近)한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문지방을 싫어하고 박대해 내팽개치고는 별도로 신묘하고 고원한 것을 초월한 곳에서 구하고자 하였다. 대저 성현의 도는 실천궁행(實踐躬行)하는 데 있으니, 공허한 이론은 숭상하지 말아야 하며, 실한 것은 마땅히 탐구하고 허한 것은 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학문하는 길은 반드시 한학(漢學)·송학(宋學)으로 나눌 것도 아니고 정현(鄭玄), 왕충(王充)의 훈고학과 정주(程朱) 성리학의 장단점을 비교할 것도 아니며, 주자학과 상산학(象山學) 등의 문호를 다툴 것도 아니다.
다만, 널리 배우고 힘써 행하되, 오로지 실사구시 한마디 말을 주로 하여 실천하면 된다." 여기에서 김정희의 실사구시론 내용은 두 가지로 압축해볼 수 있다. 하나는 정밀한 훈고를 구한다고 하는 것(精求訓詁)이고, 다른 하나는 몸소 행해 실천해야 한다는 것(實踐躬行)이다.
김정희보다 조금 앞서 홍석주(洪奭周)도 실사구시를 말하였다.
그의 실사구시는 청대 고증학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는 고증학이 의리를 뒤로 미루는 것에 대해 반대하고 고증과 의리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마찬가지로 공리공론만 일삼는 성리학의 이론에는 반대하며 무실(務實)과 실사(實事)를 강조하였다. 특기할만한 일은 홍석주의 실사구시론이 성리학과 고증학을 조화시키는 방향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이 성리학을 반대하고 고증학만을 추구하는 김정희의 실사구시론과 비교된다.(일부 옮겨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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