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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이야기(나는 왜 가나안 성도인가)

성서무류설(聖書無謬說)과 축자영감설(逐字靈感說)

by 까마귀마을 2024. 4. 29.

성서무류설(聖書無謬說)과 축자영감설(逐字靈感說)이란 성경이 일점일획도 틀림없다는 것을 믿는것이며.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성경이 한 자, 한자, 기록되었으며, 표현 방식과 표현에 동원된 소재는 말씀을 기록한 사람과 그 시대의 범주 안에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당신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시되 성경 기자들의 인격과 지성 그리고 삶의 경륜을 도구로 사용하신 것이다. 그래서 유기적영감설(有機的靈感說, Organic Inspiration)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읽고 있는 기독교 성서의 원본(지구상의 최초의 기록)은 희랍(헬라어)말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희랍어로 적은 것이다. 그러면 그 희랍어 원본이야말로 예수님 말씀을 그대로 적어놓은 것이 아닌가? 그러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아닌가? 이것은 매우 무식한 사람의 질문이다. 예수는 헬라어(희랍어)를 전혀 몰랐다. 예수는 지금은 사어(死語)가 되어 버린 아람어라는 토착말을 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성서의 원본(희랍어)도 예수의 말이 아니다예수님 말씀에 대한 최초의 기록도 단지 예수님 말씀일 것이라고 떠도는 말들을 예수님이 죽은지 450년경 후에그것도 아람어에서 희랍어로 번역하여 적어 놓은 것이다예수님이 전혀 몰랐던 희랍어로 말이다성경은 하나님 말씀이 아니다. 설사 그것이 하나님 말씀이라 해도 그것은 분명 인간의 말(언어)을 빌린 것이다인간의 말인 이상그것은 인간의 말의 구조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여러분들의 집에 있는 성서에도 보통 두 종류가 있다하나는 한글개역판이고 하나는 공동번역판이다그런데 이 두 판의 성경이 똑같은 장 똑같은 절의 기술에 있어서문장의 표현이 다를 뿐만 아니라 그 의미가 전혀 다를 때도 있다도대체 어떤 게 맞을까도대체 어느 쪽이 하나님 말씀인가성경의 한 구절 한 구절이 모두 한 자 한 획도 어김없이 모두 절대적으로 하나님 말씀이라면 도대체 이 어찌된 일인가성경에는 예수의 말은 없다. 하느님의 말도 없다. 그러한 말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여러 나라 말 번역이 있을 뿐이다. 원본자체가 번역본이니까.
 
신약성경의 원저자의 원본은 현존하지 않는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에 인용된 성구들은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의 구절들과 거의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신국론을 번역할 때는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의 성경지식을 기준으로 해야 하며 우리의 성경지식으로 번역할 수 없다. 이와같이 성경이란 원래 제멋대로인 것이다. 오늘까지 존재하는 사본 중에서 신약 27서 전체를 보전하고 있는 판본은 50종에 불과하며, 15세기 인쇄술이 개발되기 이전의 모든 판본은 하나도 동일 한 것이 없다. 현존 하는 서신 역시 모두가 원전이 아닌 복사본이다. 고증에 의하면 고대의 서신은 매우 짧았음을 유추해볼때  현재 전해지는 서신 역시 여러편지가 합하여 지고 수정되거나 추가 삽입도 있을 것으로 여겨지며 일부 서신은 사도들의 이름을 도용한 가짜 서신이다. 그리고 서신이 쓰일 당시 그 서신이 훗날 자신이 세운 교회의 정경이 될줄은 전혀 몰랐으며 서신이 쓰여진 배경은 교리상의 분쟁과 성도들의 불화합을 봉합하고 교회관리를 위해 기록되었다. 전해지는 성경의 고 판본은 모두 액센트와 쉼표의 표기조차도 없는 글자의 나열에 불과하며, 1200년경에나 장의 구분이 생겨나고 1550년경에나 절의 구분이 생겨난다. 그러므로 고 판본의 해독에 있어서 많은 오류가 발생하는 것은 구두점 없는 한문 고전이 갖는 문제점과 대동소이하다.
 
성서의 사본과 역본들의 문제는 성서의 원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원본이 없다는 것은 필사 과정에서 서로 다른 사본을 생산하게 되고 서로 다른 텍스트(사본)는 다른 번역본들을 만들게 되며 수정하거나 삭제하고 삽입 하여도 원본이 없으니 어느것이 맞고 어느것이 틀린다는 기준이 없는 것이다. 결론은 서로가 서로의 대본들을 부정확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서 주의 깊게 봐야 할 부분이 있다. 신약성서에서 원본이라 함은 예수가 사용한 아람어에서 희랍어(그리스어)로 번역, 기록된 책을 말한다. 물론 이 원본은 존재하지 않으며 5000개가 넘는 파편 조각이나 문서로 된 사본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아람어 - 희랍어 - 영어의 번역과정에서 아람어는 예수의 목소리와 함께 증발해 버렸고 무수히 많은 희랍어 번역사본들 중에서 심혈을 기울여 예수가 말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원문을 추려야 한다는 것이다.
론 비평학이 고도로 발달되어 거의 원본(희랍어)에 가까운 희랍어 원문이 만들어진 것이 소위 현대 비평판 헬라어(희랍어성경이고 그 헬라어 성경의 원문을 대본으로 번역을 했다는 것이다그러니 대본도 문제가 있지만 또 번역의 과정에서 얼마나 본래의 뜻이 왜곡되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예수가 말한 메시지가 그대로 전해진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성서의 번역도 성령의 감동에 의한다 하지만 현재의 성서번역에 수많은 오류가 발생하고 이 번역판은 못 믿겠으니 새로운 번역판을 만들자는 식으로 해서 발행된 새로운 번역판은 미국만 해도 100여 종류가 넘는다그리고 번역의 오류뿐 아니라 복음서끼리  같은 사안도 서로  충돌하는 것으로 볼 때 성서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졌다고 보기에는 모순과 차이가 너무도 많다는 사실이고 번역도 성령의 도움과 감동운운 하지만 성서마다 다르게 된 번역은 어떻게 설명할수 있을까? 게다가 성경 구절을 임의로 삭제했다는 확실한 증거도 있다.
개역 한글판(1956), 공동번역 성서(1977), 현대인의 성경(1986), 현대어 성경(1991), 표준 새번역(1993) 등의 성경에는 "없음"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구절이 13군데나 있는데 이 구절들이 한글 킹제임스성경에는 그대로 실려 있다. 그 중에서 일곱 개의 구절은 예수가 직접 말한 내용인데 "없음"이라고 되어 있다. 예수는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내 말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고 말하였지만 마태복음 (17:21), (18:11), (23:14)등무려 일곱 군데나 삭제를 당한 것이다. 이런 구절들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아니라 성경이 전달되는 과정 속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믿음과 맞지 않기 때문에 고의로 삭제해 버렸다고 한다.
한글개역판 등의 성경과 한글킹제임스 성경은 서로 다른 텍스트를 기반으로 번역한 까닭에 많은 부분에서 서로 상이한 구절들이 많고 결국에는 교리까지 완전히 틀려지게 되어 버린다. 따라서 한글개역판 공동번역판등의 성경을 고집하는 기득권 세력은 한글 킹제임스성경(1994)을 고집하는 사람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킹제임스성경측은 한글개역판등의 성경을 사탄이 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누가 옳을까? 어차피 원본이 없는 까닭에 이 번역판이 옳니 저 번역판이 옳니 하며 싸울 수밖에 없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일 것이니 중세시대 천주교의 종교재판이나 장로교의 창시자 칼뱅(Jean Calvin)이 그와 교리를 다르게 주장하던 세르베투스 등을 모조리 처형한 것처럼 교리를 다르게 주장하는 자들을 모조리 죽여 없앨 수 없는 작금에 와서는 그 시시비비를 가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바로 원전이 없는 까닭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지금의 온갖 종류의 성경들은 모두 번역본이고 사본일 뿐이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원래부터 성경은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성경과 같은 형태로 있었다고 순진하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나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져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는 책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철저하게 성직자들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Bible은 원전이 없는 번역판이 존재할 뿐이며 이 번역판을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우리말 성경의 문제를 살펴 보자.  다음은 번역의 이론과 실제(나이다&타버 共著, 김용옥譯)의 내용 중 몇 가지만을 발췌한 내용이다.
대부분의 우리 나라 교회에서 쓰고 있는 한글 개역판 성경에는 문법이 틀리거나 말이 잘 통하지 않거나 부적당한 말이 많아 고쳐야 할 곳이 대략 10,000개 정도나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성경이야말로 우리 나라의 수많은 번역서적 중 가장 엉터리 번역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가 기록한 산상수훈에는 그냥 가난한 자로 되어 있지만, 마태의 기록에 의하면 심령이 가난한 자로 되어 있다. 누가는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직접 지칭하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마태는 그것을 정신적 문맥에 집어 넣고 있다.
한가지 번역문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동정녀로부터 태어났었다는 신약성서 주장에 관계한다. 만약 성경이 틀림이 없다면, 그때 이것은 진실일 것이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단어 동정녀(virgin)의 사용이 단지 번역오류에 불과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마태복음 1:22-1:23은 다음과 같이 읽는다,"모든 이것은 여호와가 선지자를 통해 말했었던 것을 실행하기 위해 일어났다" 
동정녀(virgin)는 아이를 갖일 것이며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후 그들은 그를 임마누엘(Immanuel)이라 부를 것이다 (우리와 함께 하는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 비평가들은 마태복음이 예언자 이사야(기원전 8세기의 히브리의 예언자)를 언급하고 있었으나, 그가 사용하고 있었던 그리스어 원문은 이사야서 7:14에 단어 almah(히브리어 여성명사) ("עלמה")의 번역에서 잘못되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하나님 자신은 당신에게 기적을 보여줄 것이다. 보라, 처녀(almah)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의 이름을 임마뉴엘이라 부를 것이다.
이점에서, 성경의 옥스퍼드 사전은 70인역(譯) 성서(가장 오래된 그리스어로 역(譯) 구약 성서)에서, 그리스어 파르테노스 여신은 젊은 여자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almah를 번역하기위해 사용되었다고 언급한다. 또한, 2세기만큼 일찍부터, 유대인 논설자 Trypho는 그 히브리어가 동정녀(virgin)를 의미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었다. 그 사전은 또한 신약성서의 가장 초기 저자들(마가와 바울)은 이러한 동정녀 임신의 지식을 보이지 않는다고 언급한다.
다른 작가 David Strauss는 예수의 일생에서, (문제)는 그 단어가 순결하다는 것(동정녀)을 의미하지 않으며, 혼기에 이른 젊은 여성을 의미한다는 사실에 의해 해결되어야 한다고 나타냈다. 그는 이사야가 자신의 시대의 사건을 언급하고 있었고, 문제에 젊은 여성이 아마도 예언자 자신의 부인이었을 거라고 제안한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한글개역)
남을 판단하지 말아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 받지 않을 것이다.(공동번역)
남을 심판하지 말라 그러면 하나님도 너희를 심판하지 않을 것이다(TEV 오늘영어판)
한글개역판을 보면 남에게서 비판받지 않기 위해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글개역판의 번역은 철저한 오역(誤譯)이다. 마7:1의 한글개역판 문장을 읽고 오해하지 않을 자는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공동번역판의 번역조차 TEV만큼 선명하게 되어 있지는 못하다.
하늘 나라는 장소일까? 아니면 사건일까?
위에서 언급한 것들은 그래도 번역의 사소한 문제라고도 보아 줄 수 있으나 하늘 나라또는 하나님의 나라에 관련된 번역은 아주 중대한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번역의 이론과 실제의 저자 나이다(Nida) 박사는 하나님의 나라, 하늘 나라는 장소라는 의미로 번역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라는 표현은 너무도 자주 사람들에게 오해되어 왔다. 나라(kingdom)가 명사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곧 반성 없이 그것은 대상을 지시해야만 한다고 상정한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장소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실상 그것의 제일차적인 지시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the rule of God)을 지시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하나의 사건이다! 이러한 문제는 하늘의 나라(the kingdom of God)라는 구문에 오면 더욱 첨예화된다. 이 경우는 하늘이 하나님의 대용어(代用語,substitute)로 쓰이고 있는데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이라는 말에 대한 유대인들의 금기적 습관의 결과일 뿐이다. 그리고 하늘은 보통 일종의 장소술어(place term)로 간주된다. 이 결과 나타나는 경향은 이 구를 하늘에 있는 나라(the kingdom which is in heaven)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인데 이것은 명백히 착오적인 것이다.
그리고 도올 김용옥 선생은 여기에 역주(譯註)를 달았는데 다음과 같다.
여기서 나이다가 말하고 있는 문제는 번역의 문제 혹은 해석의 문제가 신앙의 근본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신학적 문제를 본질적으로 제기한다는 좋은 실례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이러한 나이다의 발언의 입장은 현금 우리 나라의 하늘나라에 들어가려고 광분하고 있는 일부 기독교도들에게 충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져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나라의 부흥적 성격을 가지는 대부분의 교회는 묵시사상을 팔아서 장사를 하고 있다. 인류역사상 이러한 묵시운동(apocalyptic movement)은 지속적인 것이며, 그중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로 여호와의 ㅇㅇ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최후의 심판의 날에 하늘나라에 들어갈 티켓이 이제 거의 다 팔렸다고 주장한다. 몇 자리 안 남았으니 빨리 사라는 것이다. 만원사례가 육박한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하늘나라는 완전히 하늘에 붕 떠 있는 나라이며, 우리가 들어가야 할 곳이다. 우리 나라의 대부분의 부흥목사가 돈벌어 먹는 것도 이 마지막 티켓을 남발하여 팔아먹기 때문인 것이다. 나는 천국이 그 따위 곳이라면 람보를 보러 극장에 암표를 사서 들어가듯이 암표라도 사서 들어가겠다. 만원사례 걱정없다! 하늘나라는 대상, 즉 장소가 아니라 행위이며 사건이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하나의 신화적 은유(mythical metaphor)이다. 이 세계를 버리고 하늘에 붕 떠있는 나라로 도망쳐 들어가려고 하지말고 이 세계에서 나라를 행위하라! 무지한 동포들이여.
영어성서(RV) 번역위원인 웨스트 콧(Westcott)도 천국은 장소(place)가 아니라 상태(state)라고 말했는데 다음의 바이블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어떤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누가 17:20~21) 비록 정경(正經)으로 대우를 받고 있지는 못하지만 라즈니쉬가 예수 본래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고 극찬한 도마(토마스)복음서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는데 위의 누가의 말과 한 번 비교해서 보라.
“아버지의 왕국은 너희가 생각하는 것처럼 어느 때 오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왕국은 이 세상 도처에 널려 있으나 사람이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뿐이니라.”
그럼 지옥은 악인들의 영혼이 고통받는 형벌의 장소를 뜻할까?  
헬라어 성경에 자주 나오는 하데스(Hades)라는 단어를 살펴보면 이 단어는 죽은 자가 가는 곳이라는 저승이나  황천을 의미하며, 죽은 자의 몸이 가는 곳을 의미할 때는 무덤(Grave)을 뜻한다 그러나 성서에서는 믿지 않는 자의 혼이 가는 지옥(Hell)이라 번역 되어있다.
소아시아 무덤들 앞에 oo의 무덤 이라고 쓴 묘비(墓碑)에도 무덤을 뜻하는 헬라어인 하데스를 써 있음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다. 지옥으로 번역된 신약 성경의  하데스는 죽은 악인들의 영혼이 고통당하는 불타는 지옥이 아니라, 죽으며 모두 가게 되는 무덤이나 죽음자체를 뜻했음을 성경을 조금만 주의 깊게읽어 보아도 쉽사리 알 수 있다.
게헨나는 악인이 고통받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길이 타오르는 성경적 지옥을 지칭하는 용어로 마태복음에 자주 등장하지만 게헨나는 히브리어의 골짜기 게와 고유명사인 힌놈을 헬라어로 게헨나로 불렀다. 한글로 된 신약성경에서 게헨나(gehenna)는 모두 12번 지옥으로 번역됨으로써, 가장 많은 횟수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도 예루살렘 남쪽에 힌놈의 골짜기란 지명이 있다. 마태복음보다 수십년 늦게 저술된 요한복음에는 게헤나라는 용어는 아예 한번도 나타나지 않는다.
소위 성령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번역이 이렇게 틀릴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은가? 성경의 번역역시 기독교인들은 성령의 영감을 받아서 한다고들 운운하는데 참으로 웃기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한글개역판 성서의 엉터리번역을 보면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 소리는 얼마나 주관적이고 자의적으로 내뱉는 소리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현재까지 출판된 영어성경 번역본의 수는 완역된 것이 135개이고 신약만 번역된 것이 293개에 이른다고 하는데 영감을 받아서 번역을 한 것이 맘에 안 들어 자꾸만 개정을 하거나 새로운 번역판을 내고 있단 말인가?.(도올의 바이블에 대한 고견 참조)
성경의 천국과 지옥이라는 개념은 해와 달 그리고 수많은 별들이 움직이지 않는 지구를 중심으로 떠오르고 지는 천동설 우주관에서 생겨난 산물이다. 우리가 살고있는 땅 위에는 태양, 달, 별의 하늘이 있다는 지구중심의 세계관이 만든 상상일 뿐이다. 지구가 태양을 돈다면 지구는 공중에 떠 있는 하나의 별이 되며 위 아래가 없는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면이 하늘이 된다. 뿐만 아니라 태양이 없다면 지구는 태양의 중력에서 벗어나 우주의 떠돌이 별이 되고 영하 수백도의 얼음덩어리 별이 되는데 무슨 천당이 있고 지옥이 있을수 있을까? 
 
성경이 모든면에서 하나님께 영감을 받아 쓰여졌으므로 어떤 오류도 없는 완벽한 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경은 결코 그런 책은 아니다. 수많은 모순과 차이가 있고 틀린곳도 헤아릴수 없이 많다. 똑 같은 문제를 여러시각에서 그렸고 그런 시각들이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성경은 하나의 시각에서 쓰이지 않았다. 하나님은 성경을 기록하지 않았다. 성경은 여러사람이 쓴글을 모아놓은 책이다. 다른 사람에게 원대하고 중요한 생각을 하도록 영감을 복돋워주는 글을 썼다는 의미에서 저자들이 영감을 받았다고는 할수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떤 글을 쓰라고 인도했다는 의미의 영감은 아니다. 기독교는 성경의 무오류설과 축자영감설을 포기할때 더욱 인간적인 종교로 거듭 날것이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수 있고 예수의 가르침대로 우월의식에서 벗어나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수 있기 때문이다 (버트어만)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인들의 성서를 보는 네 가지 태도를 알아야 문제가 풀리게 된다. (아래의 네 가지 태도에 대한 글은 인하대 정동수 교수의 글을 참조했음)
A) 자유주의에 속하는 사람들은 성경이 하나님에 관해서 사람들이 쓴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성경에 기록된 창조와 이적들은 믿을 수 없는 것이며, 동정녀 탄생과 피의 속죄, 부활 등의 근본적인 믿음 자체도 수용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아닌 인류의 4대 성인 가운데 한 사람정도로 여긴 슈바이처나 도올 김용옥 등이 아마 여기에 속할 것이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성경을 단지 세상의 고대 문서와 같이, 또는 조금은 다른 가치를 부여하는 정도로 판단한다.
B) 신정통주의에 속한 사람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또 그 말씀을 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성경이 부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앙의 문제를 제외한 역사적, 과학적 진술은 오류를 지니고 있으며, 각각의 구체적인 사실 진술에 있어서도 오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성경은 모든 문제에 있어서 판단의 절대기준이 되지 못하며, 권위를 지니지 못한다.
C) 보수주의에 속한 사람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역사적, 과학적 사실뿐만 아니라 초자연적인 기록에 있어서도 절대 오류가 없다고 믿는다. 그 이유는 성경이 축자적으로, 즉 글자 하나하나에 영감을 받아서 기록되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초에 기록된 원본만이 온전한 성경이고 필사본이나 번역본은 온전한 성경일 수 없다는 견해를 갖고 있어서 최초의 원본이 없어진 오늘날에는 처음과 같은 권위를 지닌 성경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여러 번역본들에는 삭제되고 첨가된 단어들과 구절들이 들어 있음은 물론 오역된 곳이 여러 곳 있다. 현재 사용되는 성경들을 비교해 보면 신구약 전체에서 각 성경들은 약 30,000군데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개역 한글판 성경과 표준새번역은 둘 다 대한성서공회에서 출간했지만 교리에 있어서 전혀 다르게 가르치는 차이를 많은 구절에서 드러내고 있으며, 똑같은 개역 한글판 성경에도 일반용과 침례교용이 다르게 되어 있다.
D) 극단적 보수주의에 속한 자들로서 현재의 성경 즉, 필사본이나 번역본도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책으로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는, 온전한 성경이라고 생각한다.
위의 네 가지 성경에 대한 태도중 우리 나라에는 C나 D와 같은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유난히 많은데 그 원인은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성서비판에 대한 정보를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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