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년간 이단 취급 ‘나그함마디’ 한글 완역본 나왔다
(등록 :2022-06-18 08:00)
"사람이 곧 하나님" 내용 탓 정죄
“영지주의자들은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의 본질과 같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자신의 본질을 아는 자는 곧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진정한 구원이다.
1945년 이집트 땅 속에서 발견, 재야신학 이규호 선생 20년 전 번역 별세 뒤에야 신학자들이 출간 주도
기독교가 진리적 측면에서 깨달음의 불교나, ‘사람이 곧 하나님’이라는 동학의 인내천과도 회통할 수 있다면?
이에 대해 답해주는 <나그함마디 문서>(동연 펴냄)가 1600년의 봉쇄를 뚫고 한글로 번역돼 출간됐다.
나그함마디 문서는 기원후 4세기 영지주의(선택받은 자에게만 주어지는 영적인 지식 혹은 그 지식으로 형성된 종교 체계를 주장하는 종교 사상) 사상을 담고 있는 경전으로, 1600여 년간 정통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정죄받고 땅속에 묻혀 있다가 1945년 이집트 나그함마디 마을 근처에 있던 파코미아수도원의 밀봉된 항아리 속에서 한 농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됐다.
나그함마디 문서는 초기 교회 창시자들이 기록한 <도마복음> <진리의 복음> <이집트인의 복음>을 비롯해 52편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들 문서는 영지주의 사상의 진본으로 국제적 공인을 받고 1970년에 들어서야 비로소 이집트 정부와 유네스코에 의해 사본의 형태로 출판됐고, 미국의 성서학자 제임스 로빈슨을 비롯한 전문가들이 공동 번역팀을 결성해 1977년 영어판을 번역 출판하면서 신학계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국내엔 도올 김용옥 박사와 오강남 교수 등에 의해 <도마복음> 등이 소개되기도 했으나 52편이 완역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이 책은 재야신학자이자 신비주의 연구가로, 지난해 64살로 별세한 이규호 선생이 완역했다.
옮긴이는 대전상고 교사로 재직하던 1981년 전두환 정권의 공안조작사건인 한울회 사건의 주동자로 몰려 구속돼 1년 반 동안 옥고를 치르고 나와 대전기독청년협의회 회장과 대전충남기독교사회운동연합 정책실장 등을 맡아 대전충남지역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이 선생은 보안감찰 대상자로 더 이상 취업이 어렵자 병고와 가난 속에서 일생을 보내면서도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중국, 일본어뿐만 아니라 성서의 언어인 헬라어, 히브리어, 콥트어까지 독학으로 깨쳐 대전 지역에선 ‘언어의 천재’로 회자됐다.
그는 초기 기독교공동체와 신비주의에 매료돼 나그함마디 문서를 비롯한 많은 원고를 남겼다. 나그함마디 문서는 고인이 이미 20년 전 번역했으나 출간되지 못했다.
나그함마디 문서 원본. <한겨레> 자료사진
별세 전 고인으로부터 간곡한 출판 부탁을 받은 이정순 목원대 신학과 교수가 감수해 국내 출간을 주도했다.
이 교수는 “많은 한국 신학자가 서구에서 공부하며 나그함마디 문서를 접했음에도 한국어로 번역하지 못한 것은 이단으로 정죄된 영지주의자라는 딱지가 붙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며 “영지주의는 당시 신생 종교였던 그리스도교가 정통 종교로 자리잡기 위해 나타난 다양한 해석과 노력 중의 하나여서, 당시 신앙공동체의 배경과 상황에 따라 하나님과 예수를 다르게 체험하고 이해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추천사를 쓴 전 한국신약학회장 차정식 한일장신대 교수는 “나그함마디 문서 발견은 쿰란 문서 발굴과 함께 20세기 성서고고학의 양대 쾌거였다”며 “영지주의는 정통을 독점한 주류 기독교에서 한때 이단으로 정죄당해 변방으로 밀려나고 역사에서 사라져 간듯했으나 면면히 서구 지성사 저변에 복류하며 근대 지성 형성에 적잖은 자양분을 공급한 게 사실이다”라고 밝혔다.
옮긴이는 별세 전 미리 써놓은 서문에서 이 책의 요체를 이렇게 전했다.
“영지주의자들은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의 본질과 같다고 믿는다.
옮긴이 이규호 선생. 이정순 교수 제공
그러므로 자신의 본질을 아는 자는 곧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진정한 구원이다.
우주적 드라마를 통한 구원 과정에서는 영지주의가 철저히 이원론으로 보이지만, 이 점에서 영지주의는 철저한 일원론이다.
그리고 이 점에서 영지주의는 불교의 가르침과 완전히 일치한다.
영지주의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사람’이며, 그의 아들의 이름은 ‘사람의 아들’이다.
그가 구원자로 세상에 와서, 인간이 곧 하나님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영지주의 입장에서는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곧 하나님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다. ‘구원자가 구원받는다.’”
글 :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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