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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때 후회하는 한가지 (중환자 실에서 지켜본...)

by 까마귀마을 2022. 3. 9.

이른 새벽, 잠이 깨면 컴퓨터에서 많은 것들을 섭렵하게 된다. 그러다 문득 눈에 들어온 한 기사가 있었다.

 

"죽어가는 사람 뇌 관찰했더니… 주마등처럼 인생이 스쳐가더라"

 

87세 남성이 뇌출혈로 응급실로 들어왔는데, 뇌파 검사를 하던 중 환자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우연한 기회로 죽어가는 사람의 뇌 활동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 루이빌대 연구진은 이 귀한 자료를 분석했는데, 굉장히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한다. 죽음을 맞이한 이 남성의 뇌의 활동패턴이 기억을 회상할 때 나타나는 뇌파 형태와 유사하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즉, 죽음에 가까웠졌을 때 사람들은 중요한 삶의 마지막 기억을 회상할 수도 있음을 과학적으로 밝혀낸 것이다.

 

 

 

 

중환자실에서 만났던 많은 환자들 중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환자가 한 분 있다. 교통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쳐 거의 사망상태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던 환자다.

 

사실상 몸의 모든 기능이 다 한 상태라, 뇌압이 일정 이상 상승하면 뇌 수액을 아주 천천히 제거해주며 관찰을 하던 환자였다. 의료진과의 대화 끝에 가족들은 연명치료를 하지 않기로했다.

 

가족들의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의료진은 기다렸고, 숙고 끝에 가족의 동의 하에 인공호흡기를 제거했다.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가족들이 침상가로 모였고 손을 잡고 숙연하게 그 시간을 기다렸다. 고요는 숨소리조차 커다랗게 들리게 했고 바스락 거리는 침구 소리들도 소음처럼 들렸다. 모니터의 일정한 기계음만 리듬을 맞추며 침묵을 깼다.

 

인공호흡기가 제거되고 5분, 10분이 지났는데도 모니터에서는 계속 심장이 뛰고, 혈압도 거의 정상이었다. 지켜보던 남자의 딸이 침묵을 깨고, 아버지를 불렀다, 

그러자 환자가 눈을 떴다.

 

“살아계시네, 살았어.”

 

병실의 무거운 침묵을 깨웠던 그 한마디에 환자는 눈을 더 크게 떴다. 손가락을 움직이며 누군가를 불렀다. 딸이 옆으로 다가가 앉자 남자는 모기 소리만한 소리로 말했다.

 

“미안하다.”

 

남자는 그 한마디를 하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 한마디를 하기 위해 눈을 떴고, 그 한마디를 딸과 옆에 있던 가족 모두에게 전했다. 그리고 혈압은 점차 떨어졌고 ,심장 모니터의 심박동 수도 서서히 느려졌다. 그동안 딸은 옆에서 계속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아버지는 최선을 다한 거예요. 우리들을 위해 열심히 살았고 엄마를 많이 사랑했고 직장에서는 최선을 다해 일했던 모범적인 가장이었어요. 이제 힘들었던 세상을 잊어버리고 하늘나라에서 편히 사세요."

 

 

딸의 진심 어린 마음이 그에게 전해졌던 것일까. 그의 얼굴 표정은 환하고 편안하게 풀리며 길고 깊게 마지막 숨을 내 쉬었다.

딸이 들려줬던 그의 일생은 보통 평범한 가장의 모습이었다. 평생 한 직장에서 열심히 일했고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가는 마지막 길이 왜 미안했을까. 그 화두를 풀기 위해 딸과 나는 카페의 한구석에서 진한 블랙커피를 한잔씩 놓고 앉았다.

 

그녀의 전언에 의하면 아버지는 늘 미안해했단다. 좀 더 풍족하게 해주지 못한 것, 아내를 더 많이 아끼고 사랑해 주지 못한 것에 대해. 그러나 딸의 입장에서 봤을 때, 아버지는 매사에 최선을 다했고 미안해야 할 일말의 것도 없는데 그랬다고. 어쩌면 이렇게 황망하게 먼저 떠나는 일조차 미안했던 것은 아니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 말에는 나도 전적으로 동감했다. 착하게 살았던 사람들은 그 모든 일에 미안해하는 것 같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것까지 미안한 그 겸손이 모든 것을 내려놓는 마음 아닐까. 딸과 이야기하며 사람들은 죽을 때 후회하는 것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다는 것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먼저 떠나서 미안하고, 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았는데 서둘러 길을 떠나야 해서 미안하고, 열심히 살았다고는 하나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것 같은 그 허망함에 미안해하는 것 같다. 

 

사람 사는 일은 다 비슷해서 억만장자도, 보통의 소시민도 마지막 시간이 가까워오면 지난 시간들을 후회한다. 아무리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던 사람도, 다른 쪽 길을 바라보며 그 길이 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도 하고.

 

산에는 늘 갈림길이 있어 이 쪽을 택하면 저쪽을 놓치게 마련이다. 한 사람이 양쪽 길을 다 오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게 바로 인생일 것이다. 선택은 늘, 이쪽이 최선이고 더 나을 거라는 판단이 섰을 때 실행한다. 정상에 올라보면 오르지 못했던 길을 따라 올랐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하기도 하고 멀리 보이는 또 다른 정상을 바라보며 저기가 더 낫지는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이미 선택의 시간은 저만큼 멀리 와 버렸고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그렇다면 이쯤의 자리에서 그만 미안해하고, 이게 최선이었다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 다독여볼 수는 없을까.

 

우리 집 베란다에서 산의 정상이 보인다. 시선을 돌려 또 다른 쪽을 바라보면 그곳에 또 다른 모습의 산봉우리들이 있다. 작은 봉우리들이 모여 그 큰 산들이 산맥을 이룬다. 작은 보통 시민의 삶을 산 우리들이 있어 작은 사회가 이루어졌고 작은 것들이 모여 큰 것을 이룬다. 그 거대한 산맥 안의 작은 부분이지만 우리가 있었기에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 아닌가. 마지막 시간에 후회를 내려놓고, 미안함을 덜어내고 편안하게 그곳을 향해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사 속 이야기처럼,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좋은 기억들만 주마등처럼 지나가기를…(글 : 전지은, 간호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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