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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이황 종가 설 차례상 및 제사의 유래

by 까마귀마을 2021. 2. 11.

                    차례(茶禮) : 설, 추석등 명절이 돌아왔음을 조상에 알리는

                    제사(祭祀) : 고인 기일에 조상 영혼 모셔와 음식 대접하는 의례.

 

                                                      안동 이황 종가의 설 차례상

                                                                원래 전통 차례상엔 5가지만

 

 

한국국학진흥원은 지난 2일 차례상에 음식을 많이 올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전통을 따르는 것이라고 발표했다. 제례 문화 지침서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따르면 설날은 새로운 해가 밝았음을 조상에게 알리기 위해 인사를 드리는 의식이다. 차 같은 간단한 음식만 올리기에 제사(祭祀)가 아닌 차례(茶禮)라고 부른다. 예법에선 다섯 가지 음식 정도만 올린다.

사례로 제시한 경북 안동의 퇴계 이황 종가의 설 차례상을 보면 술, 떡국, 포, 전 한 접시, 과일 한 쟁반이 전부다

 

그리고 안동 퇴계 이황의 종가는 추석 차례는 지내지 않는다.

대신 10월 셋째주 일요일에 시제를 지낸다. 과거에는 중양절인 9월 9일에 시제를 지냈지만 휴일이 아니면 후손들이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 10월 세째주 일요일로 정하여 시제를 지낸다고 한다

                                                                   안동 이황선생 종가 시월 시제 차림상

 

궁궐 다음으로 가장 컸던 99칸짜리 사대부의 반가 '임청각'.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냈고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했던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 선생의 후손인 고성 이씨 임청각파, 안동에서만 500년을 이어온 이 명문가에서도 추석에는 차례를 지내지 않습니다. 역시 10월쯤 조상들의 묘를 찾아 간단히 '시제'를 올립니다. 이때도 포와 과일, 떡 정도만 준비합니다.

추석을 앞두고 조선 숙종 때 소론의 당수이자 성리학자 명재 윤증선생의 종가인 명재고택을 찾았습니다. 추석 차례상을 미리 보여달라고 부탁드렸는데 300년 넘은 종가의 차례상은 생각보다 소박했습니다. 

포를 올리고 과일은 3가지 대추, 밤, 배를 올리고, 백설기와 물김치, 차가 전부였습니다. 명재 종가의 종손 윤완식 씨는 여기에 식혜 정도가 추가되는 것이 보통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상에 올리는 음식의 양도 많지 않았습니다. 대추와 밤도 높이 쌓지 않고 백설기는 한 덩이, 배는 딱 한 개를 올립니다.
"옛날 목제기는 작아요. 배는 한 개 이상 올릴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요즘 배는 커서 한 개도 올리기 힘들어 시장에서 가장 작은 배를 찾아다닙니다." 윤완식 씨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윤완식 씨는 예부터 차례상은 말 그대로 다과상이었다고 말합니다. 다과상이니 올리는 음식의 수도 많지 않고 당연히 양도 많지 않다는 겁니다. 차례상을 차리는 데 드는 비용도 3만 원을 넘지 않는다고 합니다.
명재 윤증선생은 평생 벼슬을 하지 않고 검소하게 산 선비였습니다. 선생은 초가집에서 살면서 식사도 반찬이 세 가지를 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명제 선생은 "제사를 간소하게 하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기름을 쓰고 사치스러운 유밀과(약과)와 전을 올리지 말라는 유언에 따라 명재 종가에서는 제사상에도 전을 올리지 않습니다.

명재 종가에는 제사상의 크기도 정해져 있습니다. 가로 98cm, 세로 66cm. 차례상과 제사상 모두 같은 크기의 상에 차립니다. 제사상에는 차례상에 생고기와 탕, 국, 나물 정도가 추가될 뿐입니다. 정해진 상의 크기가 작으니 더 많은 음식을 놓고 싶어도 자리가 없습니다.
윤완식 씨는 제사상이 화려해진 건 전통이 아니라 과시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꼬집습니다. "옆집은 3층을 지으면 우리는 5층을 지어야 되고 그렇게 경쟁적으로 허례 같은 게 자꾸 생기죠. 제사도 거기에 편승해서 과하게 차려지지 않나 싶어요."

                                                   명재 윤증 선생의 종가에서 300년간 이어온 추석 차례상

 

*제사의 유래

우리가 지내고 있는 조상제사는 우리의 고유 전통이라 알고 있지만 실상은 중국으로 부터 전래된 것이다
중국의 제사 기원은 공자 이전, 하나라와 상나라 때부터라고 하며, 시황제는 천제(하느님께)를 드렸는데 그것이 조상제사, 그것도 왕의 조상제사로 발전되고, 유교 사상이 정립되면서 그 기틀이 잡히고. 주 나라 때에 와서 성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조상제사도 지금처럼 죽은 자를 위한 제사가 아니고, 종손을 높이는 의미로 살아계신 부모를 높은 곳에 앉히고 제사형식의 예를 올렸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도 모든 백성이 아닌 황실에서만 적용되던 제사가, 그렇게 해야 후손이 잘 된다는 유혹을 받은 제후들이 따라서 하게 되었고, 춘추전국시대에 무너지는 사회질서 속에서 평민들도 자기의 신분을 높이기 위하여 다투어 실시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후에 대상이 죽은 부모에게까지(과도한 과시욕의 욕구) 발전된 것으로서, 제사 관습은 인간의 이기심과 신분상승 욕구의 산물인 것을 알 수 있다.

제사에 대한 이론적 뒷받침이 되기는 훨씬 후대인, 송나라 때에, 주자학(朱子學)을 창안한 주희(주자)였다고 한다. 이것이 주자학과 함께 우리나라에 도입되어 퇴계 이황에 의하여 '성리학'으로 정립되고 아울러 제사법이 성행하게 되었다.

고려 말에 최초로 소수의 귀족계층에게 특권의식으로 제사가 들여지다가 유교를 국교로 삼은. '이태조(이성계)'에 의해 민간에 널리 장려되었고, 이후에도 제사문제는 많은 굴곡을 겪으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이렇게 중국으로부터 수입된 것이 제사이며, 그것도 처음엔 죽은 조상이 아니라 산 부모에게만 절하는 존숭의 한 예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전래된 제사가 전 국민에게 확산된 것은 부모에게 효를 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집권층의 정치적 안정을 노린 정치적 술수였음이 사료를 통해 드러난다. 예나 지금이나 집권자가 자기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민 정책을 쓰기도 한다. (박정희의 반공사상, 전두환 3S 정책)

고려 말 정권을 무력으로 탈취한 이성계가, 도덕성이 문제되어 민심이 이반되자 정권의 유지를 위한 묘안으로 내놓은 것이 온 국민을 제사할 수 있게 한 것인데, 그 묘안은 이성계의 자문이며 우인이요 국부로 여기는 '무학대사'가 제안했다고 한다. 

무학 왈 "정권은 칼로 잡을 수 있으나 이반된 민심은 칼로 잡을 수 없으니 간접적인 방법을 쓰세요' 자고로 이 백성은 조상에 대한 효가 극진하오니 이를 장려하면 옳게 여길 것이외다" 하면서, 될 수 있는 대로 조상제사를 더 많이 하도록 권장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보통 가정에서도 고조부모 까지의 4대봉사( 四代奉祀 : 부모·조부모·증조부모·고조부모) 제사를 봉행하는 것이 원칙으로 알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게 지내는 집안도 있지만 그러나 유교를 숭상한 조선시대에서도 4대봉사를 제도적으로 명시한 경우는 없었다고 한다.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에는 누가, 누구의 제사를 지내야 하는지 법으로 규정했다. 1484년 성종 때 편찬된 조선시대의 법전 경국대전에는 ‘6품 이상의 관료는 부모·조부모·증조부모 3대까지를 제사 지내고, 7품 이하는 조부모까지, 벼슬이 없는 서민은 부모 제사만을 지낸다’고 적혀있다.

4대봉사는 주자가례(중국 송나라 성리학자인 주희가 일상 예절을 기록한 책)를 신봉하는 유학자들에 의해 보급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들이 신분과 지위에 상관없이 4대봉사를 주장하면서 한국에 정착했다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제사를 권장하면서 아울러 제사床의 규례도 제안했는데. 젯상의 필수 제수품으로 '대추 밤 감'을 내놓았다. 거기에는 의도(집권정권유지)가 있는데, 대추는 씨가 하나라 "이 나라의 임금은 오직 하나다" 라는 것이요. 밤은 한 송이에 세 알맹이로서 "삼 정성을 둔다"는 것이며. 감은 씨앗이 여섯 개라 "육 판서를 두어 나라를 통치하겠다"는 의도로 그렇게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하여 백성들이 제사를 지낼 때마다, "홀로 하나이신 왕이시여! 삼정승, 육판서를 거느리시고 왕의 나라가 태평성대하소서"하고 기원하는 예가 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알 수 없는 우매한 백성들은 제사 때마다 삼실과가 빠지면 정성이 부실하고 여겨 무슨 일이 있어도, 다른 음식은 적당하게 하더라도 그것만을 기필코 챙긴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전수된 것이 오늘의 제사인데, 유독 우리민족, 자신들만이 효성스런 자손이라고 자부하면서 제사를 울겨 먹는다. 제사하는 자손이 거기에 맞는 행실을 하는가 보라?(물론 다는 아니지만) 살아생전에 부모 가슴을 후벼파고 마음고생 시키다가 죽은 다음에 예를 올린다고 하니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그러면서도 제사를 고유한 문화전통이요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유산 및 신앙처럼 여기면서 고집하는 것은, 아직도 태조 이성계(소수 집권 야욕층)에게 속고 있는 것이요 사대주의 사상에 젖어있는 것이 아닌지 모른다.

 

그럼 제사가 시작된 중국은 현재 제사를 지내고 있을까요?

제사는 분명히 중국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유교문화권 나라중 유일하게 한국에만 남아 있습니다.

허나 기독교의 확산, 핵가족화, 여권신장 등으로 유교식 제사를 안지내는 가정이 늘어나고 기일을 합하거나 제수를 간소화 하는 가정이 많아지는 추세이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제사가  대부분 집안의 주요 행사이며 우리나라의 자랑인 효의 본이 되어온  점도 사실인것 같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중국에서는 제사가 없습니다. 우리처럼 명절이나 돌아가신 날에 맞추어 각종 음식과 술을 차려놓고 절을 하며 조상을 기리는 제사의식이 중국에는 없어 졌습니다.

 

중국에서는 매년 봄 청명절 하루에 조상의 무덤을 정리정돈하며 꽃을 바치는 날만 있습니다. 1980년부터 2015년까지 시행된 1자녀 정책으로 (이후 현재는 2자녀 정책) 대부분의 가정에 남녀 구별하지 않고 한명만 낳다보니, 딸을 낳아 시집을 가면 청명절 이마저도 벌초할 사람이 없어집니다. 이런 경우 해당 마을에서 일괄 벌초를 해준다고 합니다.

 

청명절 외에, 매년 음력 7월 15일 중원절 이라고 하는데요. 귀신을 위한 날입니다. 조상을 위해 종이돈을 태우는데요. 산소를 찾아가서 하는게 아니고 어디에 있든지간에 가능합니다. 종이 위에는 자식들의 이름을 씁니다. 이 가짜 돈뭉치 위에는 진짜 돈 100위엔 짜리를 하나 놓고 기도를 한 다음, 종이돈을 태우며 기원을 드립니다.

 

설날에도 동일하게 종이돈을 태우며 의식을 진행하는데요. 우리처럼 그런 제사의식은 없습니다. 그냥 가족끼리 1년에 한번 모여서 맛나게 먹는 연휴이지요. 추석은 중국에서 거의 없어졌습니다. 전통 명절이라기 보다는 그냥 하루 휴가개념입니다. 대신 10월 1일을 전후하여 일주일 국경절 연휴를 우리나라 추석 연휴처럼 쉽니다.

 

현재 우리의  제사문화는 비록 죽고 난후이지만 우리나라 조상님들이 세계에서 제일 융숭한 대접을 받는 것은 사실이네요. 지금 우리나라 어르신들이 바뀐 중국 제사문화를 보시면 유교 태생지의 후손들에게 호로자식들이라고 욕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유교문화가 조선 500년의 기틀이 되고 제사가 조선시대 부터 오늘까지 유지되고 이어지는 과정에서 지나친 가부장제도로 인한 여성들의 여권, 지위의 추락, 노동착취등으로 폐해도 많았으며 요즘은 제사가 결혼한 젊은 여성들이 가장 기피하는 1순위의 가족 행사가 되고 있는 점을 고려할때 머지않아 제사는 성묘나 가족모임등으로 바뀔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제사문화는  오랫동안 이어온 우리민족의 정체성의 정신적 바탕 이었음을 부인할수는 없을것 같습니다.

 

 

“전 부치지 않아도 돼요”

(성균관 의례 정립 위원회  추석 상차림 간소화 발표)

(2022년 9월 5일 경향신문 최민지 기자)
 

“음식 10가지 내외·순서 무관”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가 22년 9월 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차례상 표준안 방안’을 발표한 뒤 간소화된 차례상을 시연해보이고 있다. 과일과 나물, 떡, 고기 등 8가지 음식이 준비돼있다. 최민지 기자)

 

올해 추석 차례상은 ‘홍동백서’ ‘조율이시’ 같은 규칙을 잊고 가볍게 준비해보면 어떨까. 가족 입맛과 형편에 따라 고기나 생선을 올리지 않아도, 전을 부치지 않아도 괜찮다.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는 22년 9월 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차례상 표준화 방안’을 발표했다.잘못 알려진 유교 의례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는 것은 물론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을 10가지 내외로 줄임으로써 가정 내 불화와 스트레스를 막고 명절을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이날 위원회가 시연해보인 차례상에는 사과와 배, 밤, 떡, 고기와 채소, 술 등 9가지 음식이 놓였다. 기름에 지진 전은 올리지 않았다. 1열에는 수저와 술잔, 송편을 놓고 2열에는 운 고기와 익힌 채소, 절인 채소를 차렸다. 3열에는 밤과 사과, 배, 감을 올렸다.

위원회 측은 “홍동백서나 조율이시라는 말은 어떤 예서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놓는 순서나 자리는 중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가정 형편에 따라 고기나 생선을 마련하지 않을 수 있으며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의 가짓수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도 강조했다. 기름이 튀는 등 조리하기 까다로운 전에 대해서는 “사계전서 제41권 의례문해에는 밀과와 유병 등 기름진 음식을 써서 제사 지내는 것은 예가 아니라는 기록이 있다”고도 지적했다.

위원장을 맡은 최영갑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회장은 “이번 차례상 표준안 발표가 가정의례와 관련한 경제적 부담은 물론 남녀갈등, 세대갈등을 해결하고 실질적인 차례를 지내는 출발점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유학 교육기관인 성균관은 유교와 대중 간 거리를 좁히기 위한 방안으로 ‘유교 현대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의례 간소화는 현대화 계획의 핵심 중 하나다. 성균관은 지난해 2월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를 꾸리고 9차례 회의를 거쳐 차례 표준안을 마련했다.

(최영갑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위원장이 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대국민 차례 간소화 기자회견’ 뒤 추석 상차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민지 기자)

 

최 위원장은 “후손들이 차례와 제사를 아예 지내지 않는 것보다 간소하게라도 지내는 것이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해 준비하게 됐다”면서 “앞으로도 관혼상제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국민들에게 바른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날 위원회는 지난 7월 전국 만 20세 이상 일반 시민 1000명과 유림 700명 등 1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차례 관련 국민 인식조사’ 결과도 공개했다. 자동응답시스템(ARS)을 이용해 진행된 조사에서 일반 시민의 40.7%와 유림의 41.8%가 ‘간소화’를 차례 개선점 1순위로 꼽았다.

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카드뉴스와 웹툰, 리플릿 등을 시민과 기관 등에 제공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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