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따뜻해지는 사진” “아름답고 가슴 뭉클한 장면”
갑작스럽게 많은 눈이 내린 18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역 앞에서 한 시민이 거리 노숙인에게 자신의 방한 점퍼와 장갑을 벗어주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한 시민이 추위에 떨며 커피 한잔을 사달라는 노숙인의 부탁에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와 장갑을 건네는 모습을 포착한 <한겨레>의 보도에 온라인에서 “감동적이다” “가슴이 따뜻해진다” 등 뜨거운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20일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자신의 외투를 노숙인에게 벗어준 시민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게시물이 잇달아 올라왔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330)는 “천원만 손해 봐도 거품 물고 달려드는 세상에서 가슴이 따뜻해지는 사진이다”는 반응을 보였다. “동정의 마음으로 눈길만 보내며 그냥 바쁘게 지나치기만 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트위터 이용자 @******uri), “나라면 저럴 수 있었을까 부끄러워진다”(트위터 이용자 @*****ves)는 등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소낙눈이 쏟아진 18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역 앞에서 한 시민이 거리 노숙인에게 자신의 방한 점퍼를 덮어주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노숙인 ㄱ씨가 지나가는 시민에게 커피를 사달라고 부탁했던 날은 지난 18일이었다.
서울 중구 서울역 근처에 있던 ㄱ씨는 거센 눈발을 피하지 못해 추위에 떨다 지나가던 한 남성에게 “너무 추워서 커피 한 잔만 사주기를 부탁 드린다”고 말했다.
ㄱ씨의 부탁을 받은 남성은 자신이 입고 있던 두꺼운 외투와 장갑을 벗어주고 5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넨 채 홀연히 자리를 떠났다.
(▶바로가기: [포토] “커피 한잔” 부탁한 노숙인에게 점퍼∙장갑까지 건넨 시민)포털사이트에는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지며 따뜻한 눈물이 흘렀다.
추위를 녹일 커피 한 잔을 말한 노숙인 또한 우리 모두가 함께 보듬어야 할 이웃이 아닌가 싶다”, “유난히 적막한 겨울에 한 시민의 마음이 꽁꽁 언 땅을 눈 녹듯하게 한다”, “아름답고 가슴 뭉클한 장면이다. 아직까지 살만한 사회인 것 같다” 등의 댓글이 계속 달리고 있다. 강재구 기자 j9@hani.co.kr
감격스런 장면을 찍게된 사연
갑작스럽게 많은 눈이 내린 지난 18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역 앞에서 한 시민이 노숙인에게 자신의 방한점퍼와 장갑을 벗어 주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2021년 1월18일 오전 10시31분12초.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습니다. ‘지금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차디찬 카메라는 그렇게 ‘초현실적’으로 따뜻한 장면을 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사진뉴스팀 백소아입니다. 아스팔트를 출입하고 있습니다. 길 위 여기저기가 출입처라는 뜻입니다. 지난 월요일 눈 내리던 서울역광장에서 찍은 사진이 19일치 <한겨레> 1면에 실려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촬영한 저조차도 믿기 어려웠던 그날 이야기를 가감 없이 전합니다. 앞으로 사진기자를 계속하면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날 오전 저는 서울역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새해 기자회견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합실에서 텔레비전 화면으로 지켜보는 시민들 모습을 담기 위해서죠. 서울역 2층에서 취재를 마친 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니 밖에 눈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사진기자의 일상은 비가 내리면 비를 찍고, 날이 더우면 더위를 찍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찍는 겁니다. 사진기자를 하면서 깨달은 것 한가지는 눈에 보였을 때 일단 찍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금 있다 찍지 뭐’라고 생각하는 순간 중요한 장면을 놓친 적이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광장을 둘러보게 됐습니다. 다른 언론사 사진기자들도 무언가에 홀린 듯 소낙눈을 향해 걷고 있었죠. 그런데 내려도 너무 내리는 눈에 잠깐 에스컬레이터 지붕 밑에 서 있었습니다.
18일 오전 서울역 앞에서 한 시민이 거리 노숙인에게 자신의 방한점퍼를 덮어주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그때 그 모습을 만났습니다. 외투를 벗어 입혀주는 그 순간부터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습니다. 신사는 주머니 속 장갑을 꺼내 주고 또 무언가를 건네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뭔지 잘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시민들이 마치 중계를 하듯 이야기를 나누어 상황을 파악하게 됐습니다. “잠바를 벗어 주네, 장갑도 줬어. 이야 5만원도 주네.” 망원렌즈를 다 당겨도 잘 보이지 않을 만큼 먼 거리였습니다. 이내 신사는 서울로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쫓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노숙인에게 다가갔습니다. “이거 잠바, 장갑, 돈 다 저분이 주신 거예요?” “네.” 그리고 서울로 쪽으로 쫓아갔지만 신사는 사라진 뒤였습니다.
그 순간 어떡하지 싶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선뜻 그런 행동을 했는지, 찍은 사진을 써도 되는지 물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도 제가 무엇을 보고 찍은 건지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카메라를 확인해보니 사진은 딱 27장. 오전 10시31분12초부터 34초간 촬영한 것이었습니다. 보통 한 취재에서 100~200장을 찍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적었습니다. 그마저 날리는 눈송이에 제대로 핀이 맞은 사진은 몇장 되지 않았습니다.
백소아 기자
그날 저녁 다시 서울역을 찾았습니다. 믿기 힘든 일의 팩트체크를 위해서였죠. 사진 한장을 들고 그 노숙인을 찾아 나섰습니다. 사진 속 단서는 노숙인의 바지 하나였습니다. 다행히 평소 노숙인들을 봐온 서울역 경비 관계자 덕분에 서울역 지하도에서 그 노숙인을 만났습니다. 외투를 벗어 준 신사가 혹시 아는 분인지 등 오전 상황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 추워 커피 한잔 사달라’는 부탁을 받은 낯모르는 사람이 베푼 선의에 그도 얼떨떨한 것 같았습니다. 오전에 허둥지둥하느라 보지 못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얇은 수면바지, 겨울옷이라고 할 수 없는 초록색 군복, 얇은 운동화…. 저는 못 본 것을 그 신사는 봤다는 사실에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온라인에 쏟아진 댓글과 반응에 사실 많이 놀랐습니다. 따뜻한 댓글과 격려 메일에 감사했습니다. 한편으로는 혹시나 사진 속 주인공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이 지면을 빌려 전하고 싶습니다. 하얀 눈 속으로 홀연히 사라진 그 시민에게 저와 독자들의 감사한 마음을 담아 따뜻한 커피 한잔 대접하고 싶습니다. 부담스럽지 않으시다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백소아 사진뉴스팀 기자 thanks@hani.co.kr
"아직 까지 우리 사회는 살만한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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