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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백선엽은 애국자인가

by 까마귀마을 2020. 7. 12.

친일 청산의 길은 아직 멀고 험하다. 올해 만 100세인 친일파 백선엽의 국립현충원 안장을 놓고 논란이 생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일본제국 2중대인 만주국 중위였던 백선엽이 사망할 경우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미래통합당에서 나오고 있다.
이번 논란이 촉발된 배경은 크게 두가지다. 우선 현충원을 차지한 친일파 무덤들의 이장과 관련해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국립묘지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또한 친일파 백선엽의 거동이 최근 불편해진 상태에서, 국가보훈처 직원이 지난 13일 백선엽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면서 '묘역이 꽉 찬 서울현충원 대신 대전현충원에 모셔지게 되겠지만, 국립묘지법이 개정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을 남겼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백선엽은 1920년 11월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출생했다. 1939년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한 그는 1940년(20세)에 만주국 중앙육군훈련처(일명 봉천군관학교)에 입학, 1943년 4월 만주국 소위로 임관했다. 누가 봐도 부정할 수 없는 민족반역의 길이었다. 그의 나라는 만주국, 더 나아가 대일본제국이었다.
백선엽의 나라, 백선엽의 활동
1945년(25세) 8월 15일, '백선엽의 나라'는 패망했다. 당시 그는 중위였다. 이때까지 장교로 복무한 기간이 2년 4개월이고 나이도 많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의 친일을 대수롭지 않게 치부해서는 안 된다. 그가 매우 진한 방법으로 친일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가 복무한 부대 중 하나는 간도특설대다. 한국인 출신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간도특설대는 항일투쟁군에 맞서 싸우는 부대였다. 1938년부터 1945년까지 활동한 이 부대는 한국인을 이용해 한국인을 억압할 목적으로 등장했다. 한국인 군인들을 앞세워 만주 지역 한국인들을 통제할 목적으로 세워졌던 것이다. 일종의 이이제이를 위한 부대였다.
2008년 <한일관계사연구> 제31집에 실린 김주용 독립기념관 연구위원 논문 '만주지역 간도특설대의 설립과 활동'은 "한인을 이용하여 한인을 감시하고 탄압하는 방식은 일제가 즐겨 사용했던 방식으로 간도특설대 역시 이 범주 안에 있다"며 "간도특설대는 1938년 설립 이후 약 5년간 간도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를 색출하거나 항일 무장단체를 탄압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고 설명한다.
간도특설대는 명칭상으로는 만주 지역으로 활동이 국한됐지만, 이들의 활동은 중국 내륙으로도 광범위하게 확장됐다. 베이징 주변 지역으로까지 범위를 넓힌 이 부대는 잔인한 한국인 이미지를 현지인들에게 심어주었다. 한국인이 주축이라고 알려진 이 부대가 항일부대뿐 아니라 민간인 학살에도 가담했던 것. 그러니 현지인들이 한민족을 어떻게 인식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위 논문은 이렇게 말한다.

"간도특설대는 설립부터 대민 활동에 주력하였다. 직접 마을로 가서 선전 활동을 전개하거나 그것이 미진할 때는 그 마을을 소탕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간도특설대가 그 활동 영역을 열하성과 하북성으로 옮기면서 그들의 대민 활동은 정점에 달하였다.
특히 한인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심어주기에 충분한 활약을 펼쳤다. 항일단체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마을 전체를 소각하거나 민간인을 학살한 예는 한인들로 하여금 일제가 간도특설대를 설립한 목적에도 부합하는 행동들이었다. 가장 악랄한 방법은 한인들이 쓴다는 것을 일반인에게 인식시키기에 충분하였다."


논란의 중심, 미래통합당
항일 부대와의 전투뿐 아니라 민간인 학살까지 저지른 간도특설대. 이 부대에서 백선엽은 장교였다. 현충원 안장은커녕 뒤늦게라도 책임을 단단히 묻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도 도리어 그를 동작동 서울현충원에 모셔야 한다고 주장하니,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논란의 중심에 미래통합당이 있다. 이들은 백선엽을 친일파가 아닌 민족 원로로 받들려 하고 있다. 그가 사망할 경우 그를 동작동에 모셔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지난 5월 28일 보훈처를 직접 찾아 압박을 가했다. 이 자리에서 주호영 원내대표는 "6·25 전쟁 영웅의 공적에 걸맞은 예우에 부족함이 없도록 각별히 신경을 써달라"며 "여당 눈치를 본다든가 생각이 다른 사람들 주장 때문에 명예가 손상되지 않게 예우에 신경 써달라"고 압박했다.
하태경 의원도 같은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영웅을 현충원 안장 못 하게 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지키다가 산화한 모든 군인들, 현충원 자격 없다는 것과 같다"며 "지금 현충원에 잠들어 있는 호국영령을 모두 파묘하자는 주장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도 그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백선엽 장군을 서울현충원에 모실 수 없다는 문재인 정부 국가보훈처의 넋 나간 조치는 당장 취소되어야 마땅"하다며 "서울현충원에 자리가 부족해도, 없는 자리를 어떻게든 만들어서라도 모시는 게 나라다운 책무이고 예의이고 품격"이라고 주장했다.
백선엽과 민간인 학살


일제 패망 직후인 1945년 9월 평안도로 귀향한 백선엽은 그해 12월 38선을 넘은 뒤 군사영어학교에 입학해 친미 군인의 길을 걸었다. 1946년 졸업하고 중위로 임관한 그는 1948년 정부 수립 뒤 육군본부 정보국장으로 재직하면서 숙군 작업을 벌였다. 분단반대나 친일 청산 같은 민족주의적 흐름을 좌익이나 빨갱이로 규정하고 이를 육군에서 배제하는 작업을 지휘한 것이다.
1949년 7월 제5사단장으로 부임한 백선엽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준장으로 진급하고 이듬해 4월 소장 진급과 함께 제1군단장 취임에 성공했다. 1952년 1월에는 중장으로 진급했고 9월에는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에 취임했다.
1953년 1월에는 국군 최초로 대장 진급에도 성공했다. 이처럼 해방 뒤의 백선엽은 눈부신 '성공'의 길을 걸어나갔다.
미래통합당과 보수세력은 백선엽이 북한의 침공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켰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서울현충원에 안장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대한민국을 지켰다고 하려면 대한민국 국민을 지켰어야 한다. 그런데 백선엽은 오히려 대한민국 국민을 학살했다.
백선엽은 이북 출신 극우단체인 서북청년단을 중심으로 창설된 호림부대를 수하에 두었다. 이 부대는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범죄 집단이었다. 빨치산 토벌을 빌미로 강원도 인제, 경북 영천·청도·경산, 경남 거창 등에서 민간인을 약탈하고 특히 여성들에게 야만적 범죄를 저질렀다. 빨치산 토벌을 빌미로 국민들을 겁주는 역할을 맡은 부대였던 것이다. 이 부대는 육본 정보국의 지휘를 받았다. 백선엽이 정보국장일 때 이 부대의 만행이 일어났다.
이런 일은 한국전쟁 중에도 있었다. 백선엽이 이끄는 특수부대인 백야사도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 이들 역시 빨치산 토벌이라는 미명 하에 특히 지리산 일대에서 학살을 자행했다. 이들이 아무나 마구 죽였다는 점은 1951년 12월 2일부터 14일까지 거둔 '전과'에서도 드러난다. 이들은 4000명의 빨치산을 상대로 작전을 개시했다. 그런데 사살한 이들은 총 6600명이다. 아무나 닥치는 대로 죽였던 것이다.
백선엽이 몸담은 간도특설대는 항일 군대를 잡겠다며 민간인 학살을 저질렀다. 이런 행동 패턴이 백선엽의 해방 이후 행적에서도 고스란히 되풀이됐다.
소신 없는 기회주의자
대한민국을 위해 싸우지 않은 사람이 대한민국 땅에서 전공을 많이 세웠다면, 그 전공은 대체 어떤 전공인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사람을 전쟁 영웅으로 치켜세우며 서울현충원에 꼭 모셔달라고 당부하는 미래통합당의 역사 인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친일파이면서 민간인 학살 주범인 백선엽. 그를 현충원에 안장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더 있다. 그는 소신 없는 기회주의자였다.
백선엽은 신속했다. 해방 다음 달 신속히 귀향한 그는 곧바로 여운형이 세운 건국준비위원회 평안남도 지부에 가담, 평안남도인민위원회에 합세했다. 여기서 그는 치안대장 활동을 했다. 또 민족주의자인 조만식의 비서로도 활동했다. 그러다가 조만식이 김일성에게 밀리자 38선을 넘어 친미 군인의 길에 합세했다. 그런 뒤 이승만 정권에 가담해 민족분단 및 친일 청산을 훼방하는 대열에 함께했다.
이런 인물을 서울현충원에 모시는 것은 후세 사람들에게 이런 식으로 세상을 살 것을 권유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대전현충원에 안장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가 존경받으며 편안히 누워 있을 곳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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