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회 이야기(나는 왜 가나안 성도인가)

신약성경의 등장

by 까마귀마을 2023. 2. 28.

신약성경의 등장

 

초대 교회시절에는 성경이 없었다.

또한, 당시의 교인들은 종말론적 기대를 가졌기 때문에 성경에 대해서 그다지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 초대 기독교인들이 성경(Scripture)이라고 했을 때, 이는 곧 구약을 의미한 것으로서 주로 셉투아진트(Septuagint: 70인역 : 유대인 공동체에서 주전 3-2세기에 걸쳐 이집트 파라오, 프롤레마이오스2세때 이스라엘 12지파에서 각6명씩 72명이 히브리어로된 구약성서를 당시 공용어인 헬라어(그리스어)로 번역한 구약성서)라고 알려진 헬라어 구약성경을 의미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예수의 가르침으로 알려진 짧은 경구들이 구전으로 전승 되었고 사도들의 서신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구전 시대라고 한다

그러다가 초대교회의 종말론적 기대감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희미해지자, 교회의  유지와 영속을 위한 기록물들이 각 교파와 공동체에서 여기저기 등장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있는  신약성경의 실제적 출현은 구전 시대에서 기록의 방법으로 변하면서, 도마복음서와 같은 짤막한 경구와 사도들간의 서신들 에서 부터 시작하여, 복음서, 행전, 계시록등 여러 종류의 수많은 기독교 문헌들이 만들어지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에 발견된 나그 하마디 문서의 발굴로 인해 초대교회가 종말론적인 지주의적인 성격을 지녔고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교파들, 그리고 교파들간에 각각 다른 복음서와 사도들의 행전, 여러형태의 종교서들이 혼잡하게 난무했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교회에서는 바울의 서신들 뿐만 아니라 짧막한 구전의 전승들을 낭독하곤 한것으로 여겨진다. 당시에는 아직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정하거나 인정했던 성경은 물론 성경의 목록이 없었으므로 교파나 교회간에 따라 낭독하는 성서나 복음서들이 서로 달랐다. 초기의 교회는 각 교파마다 예수의 해석과 교리가 서로 달라 각 교파나 공동체가 저술한 기록물도 제 각각 이었다.

 

​현재 정경이 된 27권의 신약성서의 첫 출발은 바울 서신이었고 가장 먼저 책으로 수집 되었다.

바울 서신들이 수집되어 발간된 장소는 AD 90년경의 에베소였다고 학자들은 파악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작업이 누구에 의해서 이루어졌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 확답을 얻을만한 역사적 증거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대체적으로 두가지 가설이 있다.

첫째는 빌레몬서를 매개로 해서 추리해 본 굿스피이드와 존녹스의 가설이다.

그들은 빌레몬의 종 이었던 오네시모와 에베소 교회 감독이었던 오네시모를 동일인으로 본다.

빌레몬의 종이었던 오네시모가 주인 빌레몬의 집에서 도주 했을때 객지에서 바울을 만나 도움을 받게 된다. 그 오네시모가 나중에 에베소 교회의 감독이 되고나서 바울의 편지들을 모아 출판하는 일에 착수했다는 가설이다.

둘째는 미국 침례교 학자 다나의 가설인데 바울의 사망이 그의 서신을 수집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리고 구전에 의해서 전승되던 예수의 행적을 담은 4복음서는 바울의 서신들보다 수십년 늦게 등장했다고 학자들은 보고있다. 초기의 복음서는 예수의 가르침을 기록한 짧막한 구절들이었을 것으로 추측 하고 있으며 그러한 가르침이 집대성 돼서 도마복음서와 같은 문헌이 만들어 진것으로 여겨지며 오늘날 학자들은 도마복음서가 초기의 복음서중 하나일 것으로 추측한다. 도마복음서는 오늘날의 복음서가 형성되기 전에 예수의 어록과 교훈을 모아 놓은 일종의 자료 문헌중 하나일 것으로 추측되며 이것이 이른바 Q문서설인데 마가복음,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의 저자가 복음서를 기록할 때 이것을 자료로 사용했을 것이라는 설이다.

 

Q라는 것은 본래 자료(Quelle)라는 뜻을 가진 독일어에서 비롯된 것으로, 공관복음중 특히 마태와 누가의 두 복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예수의 교훈이 어떤 동일한 자료에서 발생되었다는 생각에서 끌어낸 가상적 자료이다. 예를 들어, 도마복음서에는 예수의 행적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예수와 제자들의 문답을 담고 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놀라운 것은 4복음서 속에서 말하는 예수의 가르침이 도마복음서속에 거의 다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Q외에 증빙서라고해서, 예수의 생애에서 성취된 구약 예언들을 모아 놓은 성구집이 있었다 한다.

 

이와 같은 자료 문서들 외에도 마가, 누가, 마태가 개별적으로 특별히 참고했던 자료집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예수의 생애와 사도들의 서신을 연결시키기 위해 구전으로 떠돌아다니던 사도들의 이야기가 사도행전으로 등장하게 된다. 공동 서신이 한 그룹으로 모인 것은 상당히 후대 즉, 2세기 말 이후의 일이었다.

 

묵시록(默示錄 :숨기어 알려 준 내용을 적은 글로 종말적 색채를 띄고있음 )은 처음에 널리 알려졌으나 2세기 후반경에 이르러서는 인기를 많이 잃게 되었다특히, 로마에 적대적인 감정을 나타낸 요한계시록은 정경으로 채택되어 견고한 위치를 얻기까지 200년 이상이나 싸움을 겪어야 했다. 실상 그 싸움은 그 후까지 계속되었고, 현대 교회에서도 그 책을 정경에 완전히 넣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차츰 여기저기서 신약성서가 된 종교서가 등장하고 있을때 마르시온의 도전은 교회의 반응을 요구하고 있었다.

영지주의자로 교회에서 파문당한 로마교회의 지도자인 마르시온은 다른 영지주의자 들보다 더 큰 위협을 교회에 가져왔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영지주의 자들과 달리 독자적 감독들과 독자적인 성경을 갖춘 독자적인 교회를 조직했기 때문이다.

[ J.L.곤잘레스 / 초대 교회사 / 서영일 역 / 은성]

 

마르시온의 독자적 노선에 대항하여 자칭 정통파(가톨릭)들은 전체적으로 기독교 경전의 목록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 교회는 아직 공식적인 정경을 가지고 있지 않았었는데 마르시온이 세운 교회에서 스스로 정경(canon: 복음서중 누가복음 1권과 바울서신 10권을 포함 11권으로 구성)을 채택하여 작성, 발표했으므로 자칭 정통파 들도 정경화 작업을 착수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무라토리 정경 목록이라는 신약성경목록이다.

 

AD 170 년경의 무라토리 정경목록에는 현재의 신약 27서 중에서 베드로 전, 후서, 야고보서, 요한3히브리서가 빠져 있었다. 베드로 전서를 제외한 히브리서, 야고보서, 유다서, 요한 2-3, 요한계시록 등의 책들은 상당히 오랫동안 어려운 투쟁을 거쳐서 정경으로 채택된 것이다.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책들은 각 그책의 사도적 저작권 문제 때문 이었다.

 

신약 27권 중에서 베드로후서, 요한 2-3, 유다서, 요한 계시록을 제외한 정경이 5세기 초에 시리아(수리아) 어로 번역되어 표준성경의 구실을 하였는데 그것을 페쉬타(Peshitta)라고 부른다.  동방의 시리아 교회는 지금까지도 계속 27권의 신약성경중 베드로 후서등 5권이 빠진 22권을 정경으로 채택하고 있다.

 

4세기경의 유세비우스(동방교회의 주교로 예수는 하느님과 똑같은 본성을 갖고있지 않다는 아리우스 주의자 (270~340)로 훗날 아리우스파의 지도자가 됨) 정경을 정하는 기준을 수많은 기독교 종교서 중에서,

호모레고메나( Homolegomena) :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진 책으로 22권 (4복음서, 사도행전, 바울서신 14권(히브리서를 바울서신으로 간주) 요한1서, 베드로전서, 계시록.)

안티레고메나( Antilegomena) :일부의 반대가 있었던 책 5권,( 야고보서, 유다서, 베드로 후서, 요한 2,3서)

노타(Nota) :가짜책바울행전, 헤르마스의 목자, 베드로의 계시록, 바나바서, 디다케. 여기에 요한 계시록을 첨가.)의 세 가지로 분류하면서 정경의 목록을 제시했다.

 

그의 분류에 따르면 야고보서, 유다서, 베드로 후서, 요한 2-3서를 안티레고메나에 분류했고, 요한계시록은 호모레고메나에 분류했지만 노타에 넣어야 된다고 자기의 의견을 덧붙였다.

 

4세기경의 예루살렘의 키릴(AD 315~386) 신약성경의 강의목록에서 요한계시록을 제외한 모든 책을 소개했다. 요한계시록은  로마제국을 비판했다는 지적 때문에 가장 오랫동안 인정받지 못한 경전 이었다AD 367년 아타나시우스(비잔틴 수사)는 그의 부활절 서신을 자기 교구의 여러 교회로 보내면서 지금의 신약성경과 똑같은 목록을 제시했다. 이 신약성경 27권을  393년에 힙포 레기우스에서, 397년에 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서 각각 정경으로 정식 채택했고 어거스틴도 이 정경을 지지했다고 한다. 그것이 마침내 제롬의 라틴어 번역 (Vulgata : 서방교회에서 사용된 라틴어역 성 )을 통해서 전 서방 교회에 유포, 사용 되었다.[박창환 / 성경의 형성사 / 대한기독교서회 ] [김남중 / 논문:성경의 형성사]

 

동방교회 일부에서는 계시록의 정경성을 계속 의심하였지만 결국은 대부분의 동방 교회도 서방교회의 정경과 동일한 정경을 가지는데 도달하였다.(옮겨온 글 일부보완)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