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不阿貴 繩不撓曲(법불아귀 승불요곡)
法不阿貴 繩不撓曲(법불아귀 승불요곡)
법은 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고, 먹줄은 나무가 굽었다 하여 같이 휘지 않는다.
註.
阿(아) : 아첨하다. (언덕 아字로도 쓰임)
繩(승) : 노끈. 밧줄.
撓(요) : 휘다. 꺽일. 어지러울.
法不阿貴 繩不撓曲 法之所加, 智者弗能辭 勇者弗敢爭(법불아귀 승불요곡 법지소가 지자불능사 용자불감쟁)
刑過不避大臣 賞善不遺匹夫(형과불피대신 상선불견필부)
故 矯上之失 詰下之邪 治亂 決繆 絀羨 齊非(고 교상지실 힐하지사 치난 결무 출이 재비)
一民之軌 莫如法.(일민지궤 막여법) ---韓非子---
법은 권력 있는 사람한테 아첨하지 않고 먹줄은 휘어진 나무라고 해서 사정을 봐서 굽혀 잴 수 없다. 법이 가해지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벗어날 수 없고 용맹한 사람이라고 해도 감히 대들 수 없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형벌을 내릴 때에는 대신이라고 해서 피할 수 없고 선한 사람에게 상을 줄 때에는 보통사람 (필부: 匹夫)이라고 해서 빠트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윗사람의 실수를 바로잡고 아랫사람의 사악함을 꾸짖으며, 혼란을 다스리고 얽힌 것을 해결하며 넘치는 것은 물리치고 그릇된 것은 가지런히 한다.
백성들이 나아갈 길을 하나로 만드는 것으로 법만 한 것은 없다. ---한비자---
"法不阿貴 繩不撓曲"
법조인이 아니라도 일반 국민들에게 생소한 말은 아니다. 중국 전국시대 말기의 법가(法家) 철학서인 '한비자'의 유도(有度) 편에 등장하는 말이다.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법은 신분이 귀한 자에게 아첨하지 않고, 먹줄(실에 먹을 묻혀 자를 곳에 직선을 긋는 도구)은 굽은 것을 따라 휘지 않는다'는 뜻이다.
며칠전 윤석열 내란·외환 혐의 사건을 수사하는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가 24일 특수공무집행방해 및 직권남용, 경호법상 직권남용교사 혐의로 윤석열에 대한 체포영장을 법원에 청구 하면서 박지영 내란특검 특검보는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윤석열은 조사에 응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라며 “특검은 수사 기한에 제한이 있고 여러 사안에 대한 조사가 예상 되는바 (윤석열에게) 끌려다니지 않을 것이라며 “법불아귀를 인용하며 형사소송법에 따라 엄중히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히면서 세간에 회자 되었다.
좀 오래 되었지만 버스기사가 버스비 요금통에 들어있는 동전 800원을 빼내어 자판기 커피를 사 먹었다고 직장에서 해고 되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해고가 부당하다고 재판까지 갔지만 법원에서 패하였다)
길거리 어디에나 있고 사람이 모이는 곳 어디에서나 쉽게 볼수있고 쉽게 사먹을수 있는, 맛있고 달콤하며 독특한 향기의 중독성이 있는, 어쩌면 우리나라에서는 나지않는 귀하고 귀한 음식이기도 하지만 그저 동전 300원만 있으면 누구나 어디에서나 쉽게 사 먹을수 있는 음료가 자판기 커피이다. 인면식이 있다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쉽게 사주고 하는 것이 300원 짜리 자판기 커피이다.
동전 300원이면 언제 어디서나 쉽게 사 먹을수 있는 그 흔한 자판기 커피라도, 300원이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한번이 아니고 몇 회에 걸쳐 공금을 횡령하거나 빼내어서 커피든 무엇을 사 먹었다면 분명히 범죄이다. 버스요금으로 지불돤 버스 요금통의 돈은 사회적으로 또는 법적으로 합의된 엄연한 버스회사의 돈이며 공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800원이라는 금전이 직장에서 해고를 당할만한 현실적, 경제적 가치가 있는지, 사회적으로 도저히 용서할수 없는 죄의 무게인지? 그리고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동전 800원 횡령에 직장에서 강제 해고를 당해야 하는 정의로운 사회가 되었는지? 이 기사를 접한 그 순간 수 십년간 직장생활을 하고 명예롭게 정년퇴직을 한 나 자신도 800원이라는 금액에 얼마만큼 떳떳했는지 하는 반성과 당혹감을 감출수가 없었다.
'법불아귀' 한비자가 펴낸 有度라는 책에서 보듯, 이제 대통령이 아닌 피의자인 윤석열에게서 보듯, 800원을 횡령하여 해고당한 버스기사 에게서 보듯, 한비자가 살았던 200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법이 만인에게 공정하지 않았고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듬은 왜 일까?
一民之軌 莫如法(일민지궤 막여법) 백성들이 나아갈 길을 하나로 만드는 것으로 법만 한 것은 없다. 백성을 하나로 만드는 그 법이 만인에게 공정하지 않다면.....
*한비자.
한비자는 기원전 280년 전국시대 말기의 태어난 법치주의자이다.
한(韓)나라 명문 귀족의 후예로 본명은 韓非다. 한자(韓子)라고 불리다가 당나라의 문인이자 정치가인 한유(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와 구별하기 위해 한비자로 불렸다. 그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날 때부터 말더듬이여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외롭게 성장했다. 그의 문장 속에서 느껴지는 울분이나 냉혹한 법가 사상은 그 영향으로 여겨진다. 한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임금에게 충언을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때 그 답답함을 책으로 쓰는데 바로 이것이 '한비자'다. 진나라 진시황제는 이 책을 읽고 한비자를 데려오기 위해 전쟁도 불사했다. 한비자에 대한 진시황제의 총애가 나날이 깊어졌으나 순자 밑에서 함께 공부했던 이사의 모함으로 목숨을 잃었다. 한비자는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의 제자로 본성이 악한 인간을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법치와 유가의 덕치를 대립시키면서 사람에게는 '은혜와 사랑'의 마음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역설했으며, 인의도덕은 현실 상황과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